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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3장 성모웅녀(聖母雄女)

쥬신제국[朝鮮帝國] 시조 단군님의 어머니는
웅녀(熊女-곰 암컷)가 아닌 웅녀(雄女-한웅의 여인)이다.

단군 모시기 경쟁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역사는 신시 배달한국 한웅 18대의 역사를 뛰어넘어 단군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이것은 민족의 시조(始祖) 단군(檀君) 이전의 역사를 모두 신대(神代)의 역사로 취급하고 인간 단군을 하늘과 땅의 자손인 신성(神聖)한 절대권자(絶對權者)로 취급하려는 의도에서 꾸며진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서양의 유일신만 믿도록 세뇌교육을 받은 철없는 일부 종교인들이 역사와 신화를 구별조차 못한 채 단군에 얽힌 신화를 종교적으로 왜곡하고 이를 한국의 정통역사로 해석하며 단군의 실체를 부정하는데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한심한 작태를 연출하고 있다.
소위 위대한 한민족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국론통일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외래(外來) 종교 신봉자들이 무법으로 날뛰며 안하무인격으로 우리의 역사를 폄하함은 물론이고 토속종교와 전통문화들을 짓밟고 마구 훼손하는데도 이들의 횡포가 무서워 그저 수수방관만 하고 있는 한심한 나라로 변해버렸다.

그런데, 한국에 세워진 단군의 동상들이 몇몇 외래종교 신봉자들의 광란으로 그 목이 잘리고 참혹하게 끌어 내려지는 엽기적인 행태가 마치 홍위병의 난동을 구경 하듯이 별 국민적인 저항 없이 자행되는 꼴을 그저 의아하게 바라만 보고 있던 중국은, 시조 단군이 갖고 있는 엄청난 의미를 깨닫고 재빨리 한국에서 추방당한 단군의 신화를 과감하게 포용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때마침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공작과 시기적으로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최고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중국은 먼저 엄청난 국가 예산을 쏟아 부으며 단군과의 인연을 강조하기 위한 조형물을 만들어 신화를 포함한 단군의 모든 것이 자국의 역사임을 기정사실화 시키려 하고 있고, 그 첫 번째의 작업의 어느새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어 큰 성과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중국이 단군을 모셔가는데 국력을 기울이며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조 단군의 의미가 고구려의 그것보다 100배나 큰 것을 알고나 있는가? 만약 이대로 단군을 빼앗긴다면 한민족은 그 뿌리를 잃게 되고 만다.

이것은 마치 내가 내 조상을 박대한 나머지 이웃동네 사람이 내 조상의 족보를 파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 한민족이 족보도 없고 그 근본도 모르는 떠돌이 집단으로 변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가?
필자가 너무 과장되게 사태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독자 여러분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바란다.

사진 ①은 중국의 국가 예산으로 세워진 만주 만티엔싱(滿天星)의 웅녀황비(雄女皇妃) 조각 석상(石像)이다. 이 웅녀황비상은 산의 정상에 세워져 멀리 산 아래에서 우러러 볼 수 있도록 돋보이게 모셨는데, 오른손에는 단군신화의 내용 그대로 마늘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쑥을 들고 서있다.

사진 ②는 산정의 웅녀황비 석상으로 오르는 길의 중간에 세워진 것인데 이 역시 단군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그대로 웅녀황비가 인간이 되어 시조단군을 생산하기 전 모습인 곰(熊)을 조각한 것이다. 앞에 놓인 것은 먹다 남은 마늘이고 발아래 바위 위에 놓인 것은 쑥이다.

사진 ③은 웅녀황비 석상의 크기를 비교해 볼 수 있도록 본 필자의 모습(키-170cm)을 담아 촬영한 것이다.

사진 ④는 북한정부가 평양시 강동구 강동읍 문흥리 대박산(大朴山) 기슭에 세운 단군릉(檀君陵)의 웅장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진 ⑤는 한국이 자랑하는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 마리산(摩利山)의 참성단(塹城壇) 전경이다.

이들을 비교해 보고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없는가?
필자는 참으로 갑갑한 마음에 분노와 슬픔을 금할 수 없다.

배달한국의 제18대 한웅천황의 황후가 된 감족[熊族]의 공주를 본서는 웅녀황비(雄女皇妃)라 이름하였다.

지금까지 한국의 사서들은 모두 감족을 곰(熊)족으로 표현하고 웅녀황비를 곰녀(熊女)로 표기해 왔다. 그러나 본서는 한웅[桓雄]의 여인이라는 뜻으로 웅녀(雄女)로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웅녀가 그녀의 이름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까지는 여인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이름을 갖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인들이 자신만의 이름이 없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상고사(上古史)에 나타난 여인들은 모두 고유한 이름이 없다. 따라서 이들을 표기할 때 항상 누구의 딸이라거나 누구의 부인 혹은 그 여인들의 출신지역이나 직업 등을 이용한 대명사를 사용한다.

웅녀황비(雄女皇妃)는 우리 한민족의 시조로 추앙받는 단군성조(檀君聖祖)의 어머님이시다. 이러한 민족의 성모(聖母)를 한낱 전설의 이야기를 인용하여 인간화 한 곰의 모습으로 부각시켜 철없는 아이들로부터 우리민족은 모두 곰새끼들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드는 교육은 이제 그만해야 할 것이다.

웅녀황비가 친정인 감족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정략적인 결혼으로 커붉단 한웅의 황비가 된 것은 이미 밝힌바 있다. 성모 웅녀황비가 아직 감족의 왕녀로 있을 당시 그녀는 나라의 안녕을 위한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제관(祭官)으로 천녀(天女)의 위치에 있었다. 천녀란 여자단군(女子檀君)을 말하는 것으로 이미 고령에 도달한 부왕(父王)을 도와 나라를 이끌었었던 것이다.

檀君聖母 雄女皇妃 尊影
단군성모 웅녀황비 존영

이런 경력을 가진 그녀는 이후 배달제국의 황후로서의 역할도 눈부시게 해내는데 그녀의 업적을 보면, 우선 최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유약한 성품의 천황을 도와 제국을 강건하게 만들어 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친정인 감족의 나라를 범족(虎族-夫餘族)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해 내었다. 또한 단군을 생산하고 민족의 성조(聖祖)로 길러낸 현명한 성모였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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