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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② 단군조선

  제4장 시조단군의 유년시절

민족의 시조 단군의 어린 시절 이야기

창힐(倉?)글과 신치글 관계

갑골문자

여기서 독자들은 우리의 옛글인 ‘신치글자’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이유로 중국글로 알려진 창힐 글자를 소개하고 있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창힐의 한자 의미를 풀어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창(倉-푸를 창)’과 ‘힐(?-곧은 목 힐)’의 두 글자는 ’푸른나라’ 혹은 ‘푸른 고장’으로 풀어져 곧 ‘푸른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치우천황(蚩尤天皇)의 옛 땅 청구(靑丘-푸른 언덕)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산호의 회화역사 제1권 ‘치우천황’편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미 헌원황제(軒轅黃帝)가 청구(靑丘) 땅을 방문하여 자부선생(紫膚先生)으로부터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받아간 사실을 알 것이다.

헌원황제에 대한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의 고기(古記)인 포박자(抱朴子)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중국의 옛 기록들은 창힐을 황제의 사관(史官-기록관, 서기관)이라고 진술하고 있으니 황제가 우리의 옛글로 쓰인 삼황내문을 가져가며 ‘신치문자’도 함께 중국에 전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것이 소위 창힐의 새발자국글(倉?鳥迹書)1)이라 하여 여러 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웅녀황비가 과연 어떤 문자를 사용하여 소년 단군을 교육시켰을까를 살펴보았다.

실제로 소년단군이 글자를 사용하여 교육을 받았는지에 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제정일치(祭政一致)를 통치제도로 삼고 있던 우리나라는 문무(文武)를 겸한 지도자를 단군이 될 수 있는 절대적 자격조건으로 요구하는 전통이 있어 왔으니 그것은 개천(開天) 이후 스승으로 상징되는 한웅통치[桓雄統治]의 전통이었다.

그러면 백성들은 무엇 때문에 한사람의 단군에게 이처럼 높은 수준의 학식(學識)과 관군(官軍)을 이끌 수 있는 무력적 자질을 함께 요구하는 것일까?

당시에 병립(竝立)했던 다른 집단들의 통치자 선발제도를 슬쩍 살펴보면 대부분 그들 집단의 최강자가 제 집단의 최고 통치자가 되거나 최강의 세력가문 출신이 세습하거나 한다. 이때 높은 학식을 동시에 요구하는 집단은 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 조상들의 통치자 선발제도는 확실히 동시대의 다른 집단들과 구별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단군제도(檀君制度)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支柱) 단군은, 단군위(檀君位)에 오르는 순간 천자(天子)로 신분이 격상되면서 인신(人神)으로 대접을 받게 된다. 단군에게는 국난(國亂)에 대처하여 자유롭게 병력을 운영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며, 아울러 국가의 명운(命運)이 걸린 사안에 대한 최종결정과 책임을 홀로 질 수 있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군에게는 그에게 주어진 권력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과 임무도 따르게 된다. 단군은 하늘과 지상을 잇는 천자로서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하여 손수 축문(祝文)을 짓고 하늘에 올리는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일에서부터, 전란이나 역병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연재해(自然災害)까지 막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백성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대신 이끌어줄 책임자로 가장 훌륭하고 믿음직한 인물을 선정하려는 것이다.

배달한국의 한웅은 곧 대단군이었다. 이처럼 막중한 책임을 가진 차기 대단군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우선 공인된 황태자의 서열에 올라 차기 대단군의 자질이 갖추어질 수 있는 황실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황자의 자리를 놓고 두 형님 황자들과 경쟁해야 하는 제후국 왕녀의 소생인 어린 단군은 가장 불리한 입장에 서서 거의 불가능한 경합에 뛰어 들고 있는 것이다.

현명한 두뇌의 웅녀황비가 어린 단군이 처한 입장을 모를 리 없다. 이제 남아있는 실낱같은 희망은 어린 단군이 피나는 노력을 쏟아 최고 수준의 학식을 얻고 최고 수준의 무술을 연마하여 두 형님 황자들과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하여 압도적인 실력차이로 인정받아야 했다.

상황이 불리한 만큼 이에 대처하는 웅녀황비의 발걸음도 빨라져 갔다. 그녀는 심복들을 부여족의 땅으로 보내어 그들이 보유하고 있던 신종 전투 장비들을 구입해 들였다. 특히 청동(靑銅)의 화살촉과 살상력이 높은 날이 굽은 장단검(長短劒), 그리고 치명적인 투창(投槍), 가볍고 효과적인 방패(防牌) 등은 모두 전투를 수행하는데 탁월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개발되어 있어서 이러한 무기를 사용하게 될 앞으로의 전쟁은 대량 살상을 피할 수 없음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웅녀황비는 어린단군에게 이러한 전투용 신장비들을 일찍부터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연마하도록 요구하였고 이에 부응하여 무술연마에 정진한 어린 단군의 무술실력은 일취월장(日就月將)으로 향상되어 갔다.

소년 단군이 13세에 이르자 돌연 소년답지 않은 우람한 체격을 뽐내며 그동안에 갈고 닦은 무술실력을 천하에 과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그동안 그의 존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던 두 형님 황자들은 아연히 긴장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워 보이는 소년 단군의 의식적인 출현은 이제는 두 형님 황자에 당당히 맞서 황태자의 지명권 후보 경합에 소년 단군도 포함되어 있다고 세상에 선포하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인자중하며 무예와 학업 정진에만 몰두했던 소년 단군은 이제 세상이 잊고 있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백성들의 민심을 자신에게 모아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때 소년단군은 몇 가지의 돌출행동을 벌여 세상을 놀라게 하는데 그중의 한 가지를 들어보면 신시의 백악산에 단독으로 들어가 3일 밤낮을 잠복한 끝에 그 동안 산에 오른 약초꾼들을 공격했던 악명 높은 곰 태웅(太熊)을 잡아끌고 내려와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었다.

소년단군이 14세가 되던 해 웅녀황비는 단군을 친정으로 보내 감국[熊國]의 부왕(副王) 직무를 맡도록 하였다. 웅녀황비의 이와 같은 결단에는 그즈음 들어 단군에 대한 견제가 그 도를 넘어 자칫 천황궁 내에서의 불상사를 우려할만큼 불길한 기운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우선 소년단군을 안전하게 피신시킨다는 의미와 함께 감족의 부왕으로서 실무 경험도 쌓도록 한다는 절묘한 수순이기도 했다.

소년 단군은 어머니의 뜻에 따라 홀로 감국[熊國]의 수도가 있는 백두산 아사달(阿斯達)2)로 떠나갔다. 그곳은 소년 단군이 태어난 고향땅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4년 전 아기 단군은 탄생 직후 어머니 웅녀황비의 품에 안겨 커붉단 한웅의 귀경 행렬을 따라 황도(皇都) 신시(神市)3)로 옮겨갔고, 천황궁에서 가까운 송화강(松花江)4)변에서 궁술(弓術), 기사술(騎射術) 등 무술연마에 정진하며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이제 다시 두 형님 황자들의 위협을 피해 외가(外家)인 감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1) 중국의 섬서성(陝西省) 백수현(白水縣) 사관향(史官鄕)에 ‘창성묘(倉聖廟)’라는 창힐의 사당이 있는데 그 안에 창힐 새발자국 글자비(倉?鳥迹書碑)가 있고, 서안시비림(西安市碑林)에도 28자의 옛글자(창힐글자-녹도문)를 새겨놓은 비(碑)가 있다.

2) 백두산 아사달 : 옛날 감족의 서울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이도백하 근처로 추정된다. 우리의 역사에 아사달이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그 뜻은 ‘처음의 땅’, ‘새땅’, ‘아침의 땅(ァサ+달)’등으로 풀이된다. 배달한국의 신시 아사달은 완산달(完達山-신채호), 그리고 백두산 아사달은 이도백하(二道伯河-김산호)로 추정하고 있으나 확증이 없어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3) 신시(神市) : 배달한국의 황도 아사달 성내에 위치한 천황궁, 만주의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송화강 연안의 요동평야에 있다.

4) 송화강(松花江) : 송화는 옛말로 ‘소밀’, ‘속말’, ‘소머리’의 뜻인데 한자의 표기로는 ‘우수(牛首)’, ‘우두(牛頭)’로 썼다. 이는 제천의식에 흰 소를 잡아 제물로 삼은데서 비롯되었다. ‘소머리’라는 이름은 후일 이들 집단이 남쪽으로 이동하며 그들이 머물렀던 각처로 이름도 옮겨져 역사에 그 자취를 남겼으니 그 대표적인 예로 강원도 춘천과 경주를 들 수 있고, 더 나아가 일본의 각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 ※ 본 도서는 김산호의 ‘대민족통사 시리즈 기획의 한 부분으로 가능한대로 ‘한님’, ‘한국’, ‘한민족’, ‘배달한국’ 등의 명칭과 ‘감 등의 명칭에서 옛 글은 아래아 ‘’이나 ‘’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사어(死語)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한민족의 정체성을 추구하는데 있어 시각적인 상징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과 가독성의 관점에서 모든 글자에 적용키는 어려우므로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비교적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될 만한 내용이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경우 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동일한 도서 내에서 혼용이 되더라도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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