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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나라백제(奈良百濟)의 대혁명(大革命)-1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서기 645년, 응신 천황의 망명 정부로 출발한 나라백제[奈良百濟]는 그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적극적인 이민 정책으로 급격하게 인구가 늘어, 이제는 공지(空地) 왜 열도(倭列島)의 주인으로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하고 정착하였다. 더구나 실라에 항거했던 수많은 가야 연맹의 지도부 인사들과 그들의 추종세력들이 가야 멸망 후, 본국을 탈출하여 대거 이민선을 타고 건너가 백제 유민들과 합류하니, 이들이 나라백제의 양대 인구 분포를 이루며 이미 도왜(渡倭)하여 살고 있던 또 다른 세력인 실라인들을 고립시키고 있었다.

나라백제는 옛 쥬신제국[朝鮮帝國] 고유의 정치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아 행하고 있었으니, 즉 나라의 머리가 되는 천황(天皇)은 옛 단군(檀君)과 같은 제사장으로서 온 백성의 안녕을 위하여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집전하며 백성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람신[仙神]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천황은 그를 대신하여 백성들과 직접 접촉하며 백성들을 다스릴 대신(大臣 : 총리 혹은 장군)을 임명하여 통치를 위임하니, 정치에 대한 백성들의 불만이 발생하여도 그 책임은 통치자[大臣]이 지게 되며, 천황이 직접 백성들의 탄핵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와 같은 정치 제도는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나라백제와 남부여는 동계 분립국(同系分立國)으로서 항상 형제국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며 그 운명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있었다. 나라[奈良]에서 서명(舒明 : 조메이)이 천황위에 오르자, 남부여의 무왕(武王)은 자신과 실라의 선화 공주 사이에서 출생한 보황녀(寶皇女)를 서명 천황에게 시집보내어 나라백제를 남부여의 부마국(?馬國)으로 삼고, 양쪽 왕가의 혈연관계를 확고히 하였다.

서기 639년, 서명 천황은 십시군(十市郡) 백제천(百濟川)가에 백제궁(百濟宮)과 백제사(百濟寺)를 지었다. 서기641년 10월, 서명 천황이 백제궁에서 죽자, 641년 11월에 황후였던 보황녀가 천황위에 오르니, 그가 곧 황극 천황(皇極天皇)이다. 이리하여 나라백제는 남부여의 사위나라[?馬國]로부터 자국(子國 : 남부여 무왕의 딸이 일본의 천황으로 등극함으로써 자식의 나라가 됨)이 되어 본국과의 관계는 한층 더 밀접하게 되었다.

보황녀가 천황이 되자 그녀를 보좌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일궁부(日宮部 : 남부여의 주 일본 대표부) 장관 경황자(輕皇子)를 누님인 황극 천황의 특별 보좌관으로 전임시키고, 남부여의 신왕(新王)으로 등극한 의자왕의 왕자 풍장(豊璋)이 일궁부(日宮部)의 군(君 : 主)이 되었다.

이리하여 오빠인 의자왕은 본국의 왕이 되었고, 여동생 보황녀는 황극 천황으로 일본의 왕위에 오름으로써 남부여와 나라백제의 관계는 형제국으로 변하였다.

황극 천황은 당시 전통적으로 나라 정부를 이끌어 오던 목협만치(木協滿致)의 후손인 명문 소아가(蘇我家 : 木協家)의 일본 이름)의 소아신하이(蘇我臣蝦夷)를 대신(大臣)으로 임명하여 정부를 이끌게 하였다.

그러자 소아하이는 그의 아들인 소아입록(蘇我入鹿)을 세워 국정을 그들 일가가 전단하고, 본국 정부로부터 오는 엄청난 원조품들을 불교를 도입한다는 명분 아래 그들 가문의 사재(私財)로 횡령하여 급기야 그 세력이 천황가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커지고 말았다.

소아씨(蘇我氏) 부자의 횡포는 점점 더 심해져 그들은 천황이 여자임을 얕보고, 벌써부터 다음 황위에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를 앉히려고 모의 하였다.

소아하이(蘇我蝦夷 : 에미시)와 소아입록(蘇我入鹿 : 이루가)은 고인대형황자(古人大兄皇子)를 태자로 세우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성덕 태자(聖德太子)의 아들 산배대형왕(山背大兄王)을 제거해야만 했다.

서기 648년 11월, 그들은 거세덕태신(巨勢德太臣)을 장군으로 하여 이루가궁[斑鳩宮]으로 쳐들어가 겹겹이 포위하고 궁을 불태워 버렸다.

탈출이 불가능하게 되자, 산배대형왕은 자식과 형제 그리고 비첩(婢妾)들과 함께 모두 목을 매어 죽었다. 이리하여 성덕태자(聖德太子)의 일족은 소아입록에 의하여 전멸당하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소아씨들의 잔인함에 떨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천황(天皇)은 집정(執政)하지 않고, 제사만 맡는 아키스가미[明神]의 자리이다.

* 서기 476년 7월, 목협만치(木協滿致)는 곤지왕(昆支王)과 문주왕(文周王)에게 쫓겨 나라백제로 탈출하였다. 그는 나라백제의 웅략 천황 정부에서 제장(齊藏), 내장(內藏), 대장(大藏)의 3장과 둔창(屯倉)의 책임자로 자리를 잡고, 목협(木協)의 성씨를 소아씨(蘇我氏)로 개명하니, 그가 곧 소아(蘇我) 가문의 시조이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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