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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조취작전(鳥取作戰)-1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대해인(大海人) 전설같이 등장하여 실라 남해안에 자리 잡고 해상 무역권을 한 손에 장악하여 남부여와 백제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인물이다. 어디서 왔는지, 그의 본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부하들마저도 모르는 수수께끼같은 인물로서 그저 대해인으로만 알려져 있다.

김춘추의 실라 정부로부터 사면을 받고 새잡기 작전[鳥取作戰]의 총대장으로 임명되자, 대해인은 감격하여 김춘추의 넓은 아량에 충성을 맹세하였다. 김춘추로부터 작전 명령을 받은 지시받은 대해인은 대선단을 이끌고 그 옛날 실라 왕자 천일창이 세웠던 왜지 실라[倭地新羅], 즉 단마(但馬) 지역으로 상륙하였다.

돌연한 실라군의 상륙에 놀란 일궁부의 풍왕은 즉각 아스카군[飛鳥軍]을 이끌고 침략자들을 되쫓기 위하여 출동하였다.
의자왕의 왕자(王子)인 부여풍장은 당시 나라백제 일궁부의 군(君)이었다.

경 황자(輕皇子)의 요청에 의하여 파견된 대해인(大海人)의 조취군(새잡기 부대)의 느닷없는 침략은 아직까지 아무런 상황을 모르고 있던 일궁부(日宮部)의 부여풍장이나 아스카 정부의 대신 소아하이(蘇我蝦夷), 소아입록(蘇我入鹿)에겐 대단히 의아스러운 사건이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침략자들을 막아야 할 입장에 있던 소아씨들은 긴급히 일궁부에 상황을 보고했고, 이에 따라 풍장군(豊璋軍)은 나니와에 주둔하고 있던 그의 직속 부여군들과 소아씨들의 장군들을 거느리고 출동하여, 포괘수문(浦掛水門 : 지금의 無鶴)에서 대해인군과 조우하였다.

싸움은 예상 밖의 결과를 낳았다. 그 동안 일본의 각지를 정복하여 굴복시켰던 무적의 아스카군[飛鳥軍]이었다. 그런데 부여풍장이 이끄는 아스카군은 조취군[鳥取軍]이라 이름한 대해인군에게 마치 나는 새가 새잡이 사냥꾼의 화살에 맥없이 떨어지듯이 단 한 번의 싸움에 어이없이 무너져 버렸다. 이 때, 아스카 연합군으로 출전했던 중대형(中大兄) 황자의 관근들이 싸움을 기피한 사실을 풍장군이나 소아씨들은 눈치도 못 채고 있었다.

단 한 차례의 포괘수문 싸움에서 궤멸당한 풍장군의 아스카 연합군은 걷잡을 수 없이 패주하였고, 대해인의 조취군[鳥取軍 ]은 무서운 기세로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여 첫 싸움이 있은 지 불과 4개월도 못 되어 벌써 아스카[飛鳥]의 외곽까지 진출하였다.

더 이상 실라군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아스카의 어전 회의가 긴급히 소집되었고, 중대형(中大兄) 황자를 실라군과의 강화 교섭 대표로 파견하게 되었다.

* 조취작전(鳥取作戰 : 새 잡기 작전) : 예전에 새를 조상의 혼령을 인도하는 영물로 생각하고 숭배하던 부여족이 거친 현해(玄海)를 무사히 건너와, 그들과 동행했다고 생각되는 조상들의 혼령을 모시기 위해 신전을 만들고 그것을 아스카[飛鳥 : 나는 새]라고 불렀다. 그래서 새로 상징되는 아스카 정부를 잡는다는 뜻으로 새잡기 작전이라 명명한 것이다.

* 대해인이 인솔하는 조취군(鳥取軍 )이 상륙한 그 지점을 지금까지 일본인들은 조취[鳥取 : 돗도리]라고 불러 오고 있다. 돗도리[鳥取]의 지명은 오늘날도 그대로 전승되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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