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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야뫼도정부[大和政府] -2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서기647년 12월, 실라의 재상 김춘추는 효덕 천황이 파견한 고향현리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나니와[難波]에 있는 야뫼도의 효덕 천황을 방문하기 위하여 역사적인 항해 길에 올랐다. 순풍을 타고 현해를 단숨에 건너 세토나이해[瀨戶內海]주변에 아름답게 펼쳐지는 경치를 만끽하며, 김춘추는 천일창 왕자 이래 백제에 빼앗겼던 왜국의 신식민 정부를 찾아가는 흥분으로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대왕! 보시옵소서. 저 곳이 새 야뫼도의 서울이 있는 나니와[難波]의 항구이옵니다. 오호, 마침 천황 폐하와 대해인 장군님도 대왕의 이 역사적인 왜국 방문을 맞이하러 나와 있나이다.”

그 당시 쥬신과 부여계의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왜(倭)국의 세력 다툼은 항상 본국 쪽에서 불어오는 정치 바람에 의하여 흔들려 왔으니, 초기에는 쥬신계로 시작하여 백제계로, 다시 가야(加耶), 실라 그리고 또다시 백제계에 의하여 통치되다가, 이제 새잡기 작전의 성공으로 실라의 영향 아래 들게 된 것이다. 이처럼 본국의 세력 다툼의 판도에 따라 왜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나니와 부두에 도착한 김춘추 일행은 효덕 천황을 비롯하여 대해인 장군의 정중한 영접을 받았다. 사실상 실라의 왕과 다름없는 제일의 세력가인 김춘추의 야뫼도 방문은 효덕 천황의 신정부를 정식으로 승인한다는 큰 의미가 있었다.

“효덕 천황(孝德天皇)께서 직접 마중을 나와 주니 대단히 고맙소이다.”

“김춘추 대왕! 먼 길에 얼마나 노고가 심하시나이까?”

김춘추를 맞은 효덕 천황은 스스로 앞장서서 나니와의 궁전으로 향하였다. 그 당시 효덕조(孝德朝)는 대해인의 도움으로 소아씨들을 축출하고, 새로이 율령국가(律令國家) 체제를 갖추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토지의 국유화 등으로 지방 호족들의 재산권에 피해를 줌으로써 그들의 불만이 점증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서울을 아스카[飛鳥]로부터 나니와로 옮겨 오자,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서서히 아스카의 일궁부(日宮部)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춘추의 방문은 야뫼도를 실라의 번국(藩國)으로 만천하에 승인받게 함과 동시에, 어떠한 반정부 움직임도 실라가 그대로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가 되는 셈이었다.

그 동안 복잡하게 전개 되었던 실라 왕실의 정권 싸움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이 지냈고, 또 백제와의대결로 사랑하는 딸 고타소랑(古陀炤良)과 사위를 잃었으며, 백제와의 승부를 위해 가우리를 방문하는 등 실로 피곤한 투쟁의 나날을 보내던 김춘추는 오래간만에 효덕 천황의 온갖 정성어린 접대를 받으며 한동안 심신의 피로를 풀 수가 있었다. 이제 보니 그 동안 얕보았던 왜국이 아주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매일 계속되는 연회에는 본토인 실라[新羅], 백제(百濟), 가우리[高句麗] 그리고 가야(加耶)에서 건너온 각종 형식의 문화가 서로 뒤엉키어 새로운 형태의 독특한 문화를 선보였다.

“대왕! 이곳 야뫼도[倭]는 대왕의 영토이옵니다. 저희들도 상국(上國) 실라의 모든 제도를 그대로 본받으려 하오니, 이번에 수행해 온 악사들의 가야금 연주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고 가도록 선처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나는데, 천황은 이 나라를 야뫼도라고 부르면서 글자로는 그대로 왜(倭)로 표기하니, 보기에 별로 좋지가 않소이다. 마침 야뫼도가 우리 실라의 번국(藩國)이 되었으니, 나라 이름은 ‘물(耶)과 뫼[山]이 있는 땅[土]’이라 하여 야뫼도라 그대로 부르더라도, 글자는 지금 실라의 연호가 태화(太和)이므로 태화를 모신다는 뜻으로 대화(大和)라고 표기하면 좋을 것이오. 지금부터는 나라 이름은 야뫼도, 글자 표기는 대화(大和)로 쓰도록 하시오. 글자의 뜻으로 보아도 크게[大]이 왜(倭) 땅에 이민해 온 모든 우리 동포들이 화목하게 화합한다는 뜻으로 화(和)자를 쓰고, 또 위로는 실라의 태(太)를 모신다는 의미가 되니 멋진 이름이 아니오?”

“정말로 사려 깊은 배려에 감격하나이다. 글자로는 대화(大和), 읽기는 야뫼도! 세상에 더없이 아름다운 이름이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대왕의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자 대해인! 너에게 이 칼을 주마. 이 칼로 나를 위하여 내 이름으로 어떠한 경우에 써도 좋다. 계속 이 곳에 남아서 실라에 충성하는 효덕 천황을 돕도록 하라. 이 곳 야뫼도(大和)정부는 아직도 뿌리가 얕으므로 크게 노력을 해야 되겠지.”

그 후부터 일본은 지금까지 써오던 나라 이름 왜(倭)를 버리고, 대화(大和)라 쓰고 야뫼도로 읽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지금도 대화(大和)를 야마토라고 읽는다.
*한문의 태(太)자는 대(大)보다는 더 크다는 의미이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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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환 218.154.62.156 2006-12-11

    넵!!

  • 다물넷 124.80.69.130 2006-11-29

    가우리뿐만 아니라 주변국과의 역학관계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그당시의 시대상황이나 정국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할 수있을 것이고, 또한 연개소문 생전에 승승장구했던 가우리가 어떻게 멸망으로까지 차닫게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듯해 올립니다.

  • 임명환 218.154.62.156 2006-11-28

    분명히 고가우리 말기의 연개소문신크말치의 이야기인데 뭐하러 남부여와 실라와 야뫼도까지 하는 거죠? 하긴.....고당최후의 승부 후에는 죽는 얘기와 협상얘기 밖에 없으니 짧겠죠.....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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