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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야뫼도정부[大和政府] -1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남부여 무왕과 실라 선화 공주의 딸인 보황녀(寶皇女)는 출생 때부터 벌써 정치의 희생물이었다. 일찍이 아버지 무왕(武王)에 의하여 정치의 제물이 되어 나라백제[奈良百濟 : 倭]의 서명 천황(舒明天皇)에게 시집을 왔고, 남편 서명 천황이 죽자, 이번엔 새로 남부여의 대왕이 된 오빠 의자왕의 정치적인 압력과 소아씨들의 흥정에 이용되어 원하지도 않았던 천황위(天皇位)에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믿었던 아들과 동생이 소아씨의 세력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세워 실라군을 끌어들이고, 나라 안이 불안하니 천황위를 내놓는 것이 좋겠다는 충정인지 효심인지 분간할 수 없는 위협을 하니, 그 서럽고 서운한 마음은 하늘에 미치는 듯 하였다.

어차피 원하지도 않았던 천황위였다. 보황녀, 황극 천황은 미련 없이 천황위를 동생인 경 황자에게 양위하고 말았다. 이로써 소아씨들의 횡포로부터 구해 달라는 누님의 요청을 이용하여 실라군을 끌어들였던 경 황자의 작전은 성공하였고, 결국 누님의 천황위(天皇位)를 찬탈한 셈이 되고 말았다.

어렵게 천황 자리를 획득한 야심에 찬 경 황자가 곧 효덕 천황(孝德天皇)이다. 그는 아직도 소아씨들의 잔재 세력과 특히 남부여의 일궁부 군(君 : 王)인 풍장의 세력이 강력한 백제 세력의 본거지 아스카[飛鳥]를 떠나 수도를 나니와[難波]로 옮겼다.

효덕 천황은 중대형 황자를 태자로 임명하고, 겸자련(鎌子連)을 재상으로 삼아 나라 이름을 야뫼도[耶山土 :물[耶]과 뫼[山]가 있는 땅[土]]로 고쳐 부르고, 실라의 제도를 모방한 개신(改新)을 단행하였다.
효덕 천황은 다음과 같은 개신책을 통하여 야뫼도 정부를 현대화시키는 데 노력하였으니….

1. 모든 토지(土地)는 나라에 속하고, 백관의 식봉 제도(食奉制度)를 실시한다.

2. 수도권에 국사(國司), 군사(軍司), 관(關), 역마(驛馬) 제도를 실시한다.

3. 군(郡)을 대 ? 중 ? 소군으로 정리하고 대군(大郡)은 40리 이상, 중군(中郡)은 30리, 그 이하를 소군(小郡)으로 하여 관리한다.

4. 양지(量地)는 300평을 1반(反), 10반(反)을 1정(町)으로 한다.

5. 새로운 호적법을 설정하여 자식들의 귀속문제를 정리한다.

6. 강순(强殉), 자순(自殉), 마순(馬殉)을 엄금하고, 묘실 내에 보물을 매장하지 못하며, 지배 계급의 거대한 분묘를 규제한다.

또한 신정부의 모든 중요 사안은 실라 장군 대해인의 자문을 받아 실시하니, 대해인(大海人)은 실질적인 실라의 총독 역할을 하여 남부여 측의 일궁부(日宮部)를 대신하였다.

서기 646년 9월, 실라 금성(金城)의 김춘추궁(金春秋宮)

“대왕! 명령하신 대로 새잡기 작전은 대성공을 거둬 나라 안의 반적인 소아입록을 잡아 죽이고, 그 아비 소아하이와 그의 친족을 거의 멸족시켰나이다. 아직도 일궁부(日宮部)에 부여풍장(扶餘豊璋)이 버티고 있긴 하오나, 대해인 장군에게 포구ㅐ수문 전투에서 패전한 후, 자신을 잃고 아스카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나이다. 우리 새 야뫼도 정부는 실라의 제도를 그대로 본받아 개신을 완료하였사오니, 대왕께서 한 번 저희 효덕 천황을 방문하셔서 위로의 말씀이라도 주셨으면 소원이 없겠나이다.”

“고향현리(高向玄理), 그 동안 수고 많았군.
하하하! 자네가 나를 대왕(大王)이라 부르는데, 나는 아직 실라의 왕이 아닐세. 실라엔 아직도 선덕여왕(善德女王)이 병중에 계시므로 말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네.
왜국(倭國)에서 백제의 세력을 몰아내고 실라에 충성하는 효덕이 천황이 되었으니, 아주 잘 된 일이야. 그러나 효덕 역시 남부여 의자왕의 동생일 뿐이야. 그래서 대해인(大海人)을 그곳에 계속 주둔시켜 왕실을 철저히 감시할 수밖에 없어.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내가 일차 왜국을 방문하여 실라의 결심을 효덕이 확실히 깨닫도록 해 주려고 하네.”

서기 647년 1월, 그 동안 병으로 시달리던 풍운의 선덕여왕이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야심으로 피가 끓는 김춘추에게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선덕여왕은 출가했던 몸으로 김용춘에게 이용당하여 다시 속세로 돌아와 여왕위에 올랐으니, 후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조정엔 아직도 약간의 보수파들이 있었으므로, 왕통의 정통성을 내세워 명분을 얻기 위해 김춘추는 자신의 야망을 감추고 우선 그의 어머니인 천명을 세우니, 그녀가 곧 진덕여왕(眞德女王)이다.

천명(진덕여왕)은 김춘추의 각본에 따라 왕위에 오르자, 곧 김춘추를 태자로 삼고 연호를 태화(太和)로 정하였다. 따라서 김춘추의 야뫼도(倭) 방문은 실라의 내각이 완전히 그의 뜻대로 구성된 12월까지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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