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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황산벌결전(黃山伐 決戰)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7월 9일, 실라 대장 김유신이 이끄는 제2군 5만 병사는 탄현을 떠나 부여성을 향하여 진격을 개시하였다. 의자왕은 급히 군사를 모아, 계백장군의 5천군사로 하여금 김유신군을 막게 하였다.

천험(天險)의 요새인 탄현(炭峴)을 지키지 않고 이제 와서 불과 5천의 병력으로 김유신의 5만 군을 막으라 하니 계백은 탄식하며 이 싸움에서 돌아올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이 걸린 이 싸움에 어찌 목숨을 아낄 것인가! 계백과 그의 5천 군사들은 하나같이 비장한 각오로 전장터로 향하였다.

마침 계백군의 행렬은 그의 집 앞을 통과하게 되었다. 계백은 군의 행진을 잠시 중지시키고, 말을 달려 그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병사들은 벌써 장군의 비장한 결심을 알았다.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이고, 계백 장군은 이를 구하러 간다. 그러나 그의 용맹스러운 병사들과 함께 장군은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가는 장군이 뒤에 남은 처자가 적군에게 유린당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전투에 최선을 다할 수 있겠는가?

장군이 집에 들어서기 전에 이미 그의 처자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 자진하여 부여인들의 절개를 보여주고, 떠나는 장군의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장군이여! 더 이상 가족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나이다. 사력을 다하여 적병들을 물리치고 이 나라를 구해 소첩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소서. "

사랑하는 딸 매랑(梅娘)도, 아내 아랑(阿娘)도, 소첩들도 모두 함께 부여인의 절개를 빛내며 장군의 이름에 욕보임이 없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미 눈물도 말라버린 계백 장군은 집을 불질러 흔적을 없애고 출전하였다.

실라의 김유신군은 이미 탄현을 넘어 남부여의 소부리(서울)인 부여성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다. 실라군은 반드시 황등야군(黃登也郡 : 지금의 논산과 연산 사이의 이른바 황산벌)으로 올 것이다. 이 곳을 통과하면 부여성까지는 석성(石城)하나를 남겨 놓게 되고, 남부여의 운명도 끝나게 된다. 계백(階伯)은 자신들의 무덤터를 황산벌(黃山伐)로 정하고, 싸움에 유리한 고지를 찾아 진을 치고, 실라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김유신을 대장으로 하는 실라의 제2군 5만 명은 김품일(金品日)과 김흠순(金欽純)을 선두로 반굴(盤屈)과 관창(官昌) 등의 화랑군들도 포함하여 필승의 신념으로 사기도 드높게 황산벌에 도착하였다.
황산벌에 진출한 김유신은 그 곳에 이미 남부여의 계백 장군이 진을 치고 실라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상대는 남부여의 명장 계백이다. 눈앞에 보이는 적의 선봉으로 보이는 5천 명쯤의 군사가 있으니, 저 언덕 뒤에 아마도 적의 주력이 있을 터인데, 문제는 누가 지휘하며, 얼마나 많은 병력일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적의 왕성을 지척에 두고 있으므로 결코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도다.”

“계백이 5천의 병력으로 선봉에 섰다면, 적의 본진은 틀림없이 의자왕이 적어도 수만 명의 왕군을 이끌고 있을 것이다. 적의 형편을 정화기 살펴낼 때까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가볍게 싸움을 걸어 적의 움직임을 잘 관찰하면, 본진의 동태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장군 김흠순의 아들 반굴이 선봉이 되기를 자원하고 나섰다. 실라에는 화랑도라는 소년단이 있어서 그들의 대장을 화랑이라 했고, 소년단원을 낭도라 하여 장차 나라의 큰 재목으로 길러 내기 위한 특수 훈련과 강인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고 있었다. 화랑 반굴이 그의 낭도들을 거느리고 전장의 선두에 서서 모든 실라군 앞에 모범을 보이고자 하였다.

대장군 김유신의 허락을 받은 화랑 반굴은 그의 낭도 집단을 이끌고 범같이 무서운 계백장군이 있는 부여군을 향하여 돌진해 들어갔다. 어찌하든지 적진을 돌파하여 언덕 뒤에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여군의 본진을 확인해야만 했다.

실라 화랑 반굴의 맹렬한 돌격을 맞아 부여 측에서도 진도(珍島)의 장수 아수라(阿修羅)가 계백 장군에게 출전을 허락받고 나섰다. 물론 아수라 장수는 실라의 돌격대 선봉에 화랑 반굴이 서 있는 줄 모른다. 사실 계백 장군의 5천 병사는 선봉대가 아니었고, 언덕 뒤에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부여군의 본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겨우 5천 병력으로 김유신의 5만 병사들과 10대 1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 계백 장군의 위장 전술이었다. 그러나 김유신의 입장에서는 왕성과 지척지간인 이 곳에 남부여의 최정예군이 나서서 왕성을 방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했다.

부여계의 계백 장군이 반굴의 화랑군에게 그들을 돌파하도록 허용할 리가 있겠는가? 장수 아수라는 곧 창을 잡고 달려 나가 단창에 반굴의 목을 찔러 말에서 떨어뜨리고. 화랑을 잃은 낭도의 무리를 마음껏 유린하니, 실라는 초전에 화랑을 잃고 패전함으로써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아울러 부여 5천 결사대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전쟁에 임하여 결코 물러서지 말라! 임전무퇴(臨戰無退)는 화랑도 정신의 중요한 가르침이었고, 화랑 된 자들의 자랑이요, 긍지였다. 그러나 반굴이 부여의 장수 아수라의 창에 목숨을 잃고 혼비백산한 그의 낭도들이 본진으로 도망쳐 돌아오자, 전투를 앞둔 실라군의 사기는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렇지않아도 반굴에게 선봉을 빼앗겨 분하게 생각하고 있던 또 한 명의 화랑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관창(官昌)으로, 실라 장수 김품일(金品日)의 아들이었다. 기제 겨우 16세의 어린 소년인 관창은 동료 반굴의 죽음과 그 낭도들의 낭도답지 못한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화랑의 명예를 위하여 자신을 단독으로 출전시켜 주도록 졸라 대었다.

“대장군, 지금 화랑 반굴의 패전과 그 낭도들의 겁먹은 행동으로 우리 실라군의 사기는 형편없이 떨어져 버렸나이다. 만약 지금 당장 격전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사기 충천한 부여군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까?”

“과연 김품일의 아들답도다. 실라군은 너와 같은 화랑들의 활약으로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좋다, 관창아! 가서 힘껏 싸워서 실라군의 사기를 올려 다오.”

실라군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16세의 소년 관창은 실라군의 떨어진 사기를 다시 일으키고, 동료 반굴의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낭도들도 못 따르게 하고, 단신으로 적진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를 지켜본 부여 축의 장수 아수라(阿修羅)도 단신으로 달려나와 결투를 요구하는 관창의 뜻에 호응하였다. 이리하여 소년 장수 관창과 진도의 맹호 아수라 장군의 결전이 벌어졌다.

소년 장수 관창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아수라 장수와 싸웠다. 실라의 5만 병사들은 이제야 비로소 무슨 일이 눈앞에서 전개 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연약한 소년 화랑 관창이 진도의 거한(巨漢) 아수라에게 밀리자, 이를 쳐다보고 있는 실라군은 아타까움으로 함성을 하늘 높이 질러서 관창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 하였고, 부여군도 진고(陳鼓)를 울려서 아수라 장수를 열렬히 응원하였다.

돌연 아수라의 큰 창이 관창의 머리를 스치며 관창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 때에야 비로소 실라 장수가 아직 어린 소년임을 알아본 아수라는 관창에게 돌아가라고 하엿따.

그러나 관창은 또다시 말 위에 올라 떨어진 창을 주워들고, 죽음을 각오한 듯이 아수라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어쩔 수 없이 아수라는 결국 관창의 가슴을 찌르고 말았다. 비록 전쟁중이라도 어린 소년을 죽였다는 자랑스럽지 못한 행위를 한탄하며, 아수라는 관창의 목을 잘라 말꼬리에 매어 실라 측으로 되돌려 보내 주었다. 최소한 실라 측으로 하여금 그들의 영웅에게 걸맞는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었다.

“용사들이여! 보았는가? 저 두 소년 화랑들의 장렬한 최후를, 우리 모두 사력을 다하여 적군을 무찔러서 꽃 같은 젊음을 미련 없이 버린 저 두 손녀의 혼령을 위로해 주지 않겠는가? 자, 진격! 진격이다!”

황산의 너를 벌판을 가득 메운 실라의 대군단은 드디어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선봉에 장군 김흠순이 1만 명으로 달려들고, 우익에 천존(天存)이 역시 1만 명으로 그리고 좌익에 김품일이 1만 명의 병사를 휘몰아 질주해 오며, 그 뒤를 이어 대장군 김유신이 본진 2만 명을 이끌고 계백의 진영을 향하여 돌격하였다.

이제 더 이상 내일은 없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을 뿐이다. 더 이상 적을 속이는 위장술도, 기만술도, 군 작전도 필요가 없다. 10대 1의 싸움에 무슨 작전이 통할 것인가? 소위 최후의 백병전(白兵戰)이 있을 뿐이다.
대동아(大東亞)를 호령하며 7백 년의 역사위에 찬란히 빛났던 영광스러운 백제(百濟)의 역사는 남부여를 끝으로 이제 임종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장군 계백과 그의 병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결전에 임하였다.

“용맹스러운 부여의 장병들이여! 이제 우리에게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도다. 이 한 목숨 던진다고 조국이 구해질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부여의 장부답게 조국의 명예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 이 황산벌의 귀신이 되자. 먼 훗날, 사람들은 우리의 충절을 노래할 것이고, 우리의 장렬한 최후는 역사에 길이 기록될 것이다. 충성스러운 나의 병사들이여! 나는 기금 너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또다시 극락에서 만나길 바라며, 그 때에는 황산벌의 전설을 노래할 수 있겠지. 우리 모두 함께 가는 장부의 길이 결코 외롭지는 않으리라. 자, 모두들 잘 가거라!”

드디어 계백과 그의 5천 결사대들은 실라 5만 명의 대군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향하여 죽음의 돌격을 감행해 들어갔다.
이 비참한 돌격전을 맞은 실라의 5만 군병도 결사적으로 응전하였다. 어느 새 황산벌의 넓은 벌판은 검붉은 피로 물들어 갔다.

싸움은 끝났다.
핏발선 눈으로 절규하며 싸우던 전사들의 함성 소리도,
천지를 뒤흔들 듯 귀를 찢던 전진의 북 소리도, 징 소리도,
날카로운 칼과 창이 난무하며 결렬하던 금속성 소리도,
죽음으로 조국을 지키자고 목의 피를 토해 내던 장수의 외침도,
적의 창칼에 깊은 상처를 안고 고통 속에 울부짖는 병사들의 신음소리도
마침내 모두 침묵하고 말았다.
고요한 정적이 뒤덮인 피와 주검뿐인 황산 벌판을 무심한 황혼의 노을은 그 붉은 빛을 마음껏 불태우며 처참한 전장을 아름답게 물들여 보려고 애쓰고 있다.
이 날의 결전으로 계백 장군과 그의 5천 결사대는 전멸당하였고, 실라의 병사들도 무려 1만여 명이 전사하고 말았다.
실로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러나 부여의 왕성은 지척에 있고, 더 이상 실라군을 막아 싸울 부여의 용사들은 아무데도 없었다.
영광스럽지도 못한 승전 아닌 승리를 간신히 쟁취한 김유신은 씁쓸한 마음으로 계백과 거의 5천 장병들의 장렬한 최후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잔군 4만 명을 수습하여 황산벌을 뒤로하였다.
아직도 죽지 않고 부상당한 말들만이, 벌판에 누워 편히 쉬고 있는 주인들이 다시 벌떡 일어나 그들의 등에 타고 어디론가 가자고 호령할 때를 기다리는 듯 서성이고 있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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