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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낙화암(落花巖)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황산벌의 격전으로 기진맥진한 김유신은 부여의 왕성을 점령하여 그의 명예를 되찾기를 열망하였다. 그러나 김유신의 제2군이 황산벌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실라 제1군 법민 태자가 당군의 우(右)군을 지휘하는 김인문 왕자와 연합하여 이미 부여성을 함락시켰고, 호화로웠던 왕성은 이미 불더미 속에 휩싸여 있었다.

비겁한 의자왕은 나 ? 당 연합군의 침공이 있기 직전에 왕성과 백성들을 버리고, 몇 명의 신하들만 대동한 채 새벽의 어둠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 나루[熊津城]로 도망쳤다.

의자왕이 성을 빠져 나가자, 뒤에 남은 태자 융(隆)과 상좌평(上佐平) 천복(千福)은 성을 들어 나 ? 당 연합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천하에 그 호화로움을 자랑했던 궁성은 침략자들의 약탈과 방화로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아름다운 3천 궁녀들을 발견한 침략자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도적 집단으로 변해 닥치는 대로 강간과 강도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에 몸과 마음의 정절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부여의 3천 궁녀들은 왕후(王后)와 왕의 희첩들(姬妾)들 그리고 태자의 비빈(妃嬪)들과 함께 모두가 대왕포(大王浦) 언덕으로 달아나 집결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의자왕의 3천 궁녀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적을 바랐으나, 침략군 병사들은 아름다운 여인들을 발견하자, 수습할 수 없는 폭도로 변하여 이들을 겁탈하기 위하여 대왕포로 모여 들었다. 적에게 잡혀 몸을 더럽히고, 그들의 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자결하여 부여인의 정절을 지킬 것인가?
여인들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여 몸과 마음을 지키기로 하였다. 품안에 고이 간직했던 은장도를 번쩍 뽑아들고, 그녀들은 스스로 가냘픈 목과 가슴을 찔렀다. 차마 용기가 없는 여인들은 서로의 가슴을 찔렀고, 그것도 못하는 여인들은 치마폭을 뒤집어쓰고 절벽을 뛰어내려 백마강의 물결 속에 묻혔다.

부여 여인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떨어진 3천 송이의 꽃들, 사람들은 이곳을 낙화암(落花巖)이라 부른다.

왕성(王城)은 점령했으나, 그 곳에 있어야 할 부여의 왕은 이미 탈출하고 없었다. 부여의 의자왕을 잡지 못하면 이 전쟁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김유신과 태자 법민은 병을 다시 수습하여 의자왕이 도망갔을 것으로 생각되는 나루[熊津城]를 향하여 추격해 갔다.

한편, 나루에 도착하여 전국의 구원병들이 도착할 때까지 농성을 하려던 의자왕의 계획은 남부여 만고의 대역적인 임자(任子)에 의하여 허무한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미 김유신과 내통하고 있던 임자는 그의 심복인 수성대장(守城大將)을 시켜 의자왕을 잡아 실라에 투항함으로써 그의 생명을 지키려 하였다.

더 이상 아무런 희망도 바라볼 수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의자왕은 왕자 효(孝)와 소자연(小子演)과 함께 성문을 열고 실라군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의자왕(義慈王)이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침 금돌성(今突城)에 있던 김춘추(金春秋 : 太宗王))는 급히 말을 달려 소불[所夫里 : 서울]로 달려가서 상좌에 올라,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金庾信) 등을 좌우에 거느리고 부여의 황제였던 의자왕의 항복을 정식으로 받았다.

“부여 700년의 사직을 들어 위대하신 실라의 대왕 앞에 항복하나이다. 지난날의 불행했던 과거를 잊고, 바다같이 넓으신 아량으로 부여의 길 잃은 백성들을 거두어 주소서.”

“그대 의자왕 들으시오. 이 전쟁에는 실라 뿐만 아니라, 우리 당나라 군사도 13만 명이나 참가하고 있소이다. 따라서 부여의 왕은 실라에 대한 항복 이외에도 우리 당나라에 대한 항복의 의식을 장안성에 있는 당 황제의 궁전에서 행해야 할 것이외다. 이 문제에 대해서 이 곳에 계신 실라의 대왕께서도 동의해 주실 것이오이다.”

“남부여는 백제를 계승한 나라로서, 가우리[高句麗]와 더불어 수백 년간 중국 땅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기에, 우리[중국]가 반드시 항복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황제의 명령이기도 함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왕께 아뢰오. 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의자왕의 신병을 우리[唐]에게 넘겨 주여야 합니다. 첫째는 대왕을 돕기 위해 무려 13만이라는 황제의 군사들이 파병되었은즉, 그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의자왕은 장안(長安)으로 보내야 합니다. 또 하나의 중대한 이유는, 이제 겨우 부여의 왕을 사로잡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변방에 막강한 부여 병사들이 건재하므로 만약 그들이 옛 왕을 구출하기 위하여 저항을 시작한다면, 우리 연합군의 힘으로 당해 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당나라에 빚도 갚으시고, 또 부여 평정에 장애물도 미리 없애소서.”

“소(蘇)장군의 말씀에 깊은 뜻이 있은즉, 의자왕을 장안으로 데려가는 데 동의 하겠소. 소뿔한(舒弗翰)의 의견은 어떠하시오?”
“저 역시 소 장군의 의견에 동의하옵니다. 일단 부여의 왕이 당(唐)으로 끌려가면, 망국의 백성들도 실라보다는 저희 왕을 끌고 간 당을 더 원망하지 않겠사옵니까?
당나라에 인심도 쓰고, 소 장군의 면목도 세우며, 우리 실라의 실리도 챙기는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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