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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일본국 탄생(日本國誕生)-2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대해인(大海人), 돌연히 실라의 강군을 이끌고 일본 땅에 상륙하여 일궁부의 풍왕군을 격파하고, 무인지경으로 달려 왕성을 포위, 당대 제일의 세력가인 소아(蘇我)씨 일가를 격멸하고, 일본 최초의 무력혁명을 일으켰던 수수께끼의 사나이, 그러나 그 후 김춘추의 새잡기군[鳥取軍]의 철군으로 병사 없는 장군이 되어 김춘추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일본 땅에 남았던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주위를 압도하는 인품을 가졌으며, 언젠가는 큰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가미왕은 대해인 쪽에도 낚싯밥을 걸어 놓기로 하고, 그의 둘째 딸인 누가다[額田]를 시집보내어 두 명의 권력자들을 사위로 삼았다.
누가다[額田], 당시 방년 17세의 꽃 같은 처녀로서 소위 일본 제일의 미인이라고 소문나 있었다.

누가다[額田]의 아름다움은 소문에 소문을 더하여 세상에 널리 퍼져 나가 급기야 천지 천황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만약 가가미왕이 자신의 더 예쁜 딸을 대해인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대해인의 세력이 나보다 더 강력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돌연 천지 천황[中大兄]의 머리에 의심이 솟아 올랐다. 옛날, 천황의 권위를 짓밟고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던 소아씨 일가의 횡포를 피로서 숙청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 자신의 권력을 능가하는 신하가 또다시 나타났다면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천지 천황은 대해인을 불러 그의 충성심을 시험해 보려고 생각하였다.
부여 용왕과 그의 부여니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누각이 비파호(琵琶湖)의 맑은 물 위에 날아갈 듯이 멋지게 서 있다. 천지 천황은 마침내 대해인을 초청하여 단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너무 늦게 인사하게 되어 송구스럽소, 대해인. 그대가 날 도와 주었기에 오늘날 내가 천황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하하하! 그 옛날, 소아씨 놈들이 우리 천황가를 마음대로 주무를 때, 그대가 실라군을 이끌고 와서 소아씨들을 쳐부숴 주었기에 오늘날의 영광도 가능한 것이 아니겠소? 내가 그 때의 고마움을 이제야 갚아 드리려 하오. 하하하! 나는 계속해서 실라인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그대는 실라인으로서 그들을 잘 달래어 나라의 뜻하는 바를 잘 협력해 주고 있으니, 나는 여러 가지로 대해인에게 빚을 지고 있구려. 자, 그럼 내 술 한잔 받으시오.”

“천황 마마! 더 이상은 실라인이니 백제인이니 하는 구별이 없어져야 하옵니다. 우리는 모두 일본인이 되어 더 이상 대륙의 내란에 참여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믿고 의지하며 대동단결하기 위해서도 대해인과 나의 관계는 더욱 더 가까워져야 하오. 하하하! 그래서 내가 깊이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의 관계를 좀더 가깝게 하기 위하여 우선 우리 둘이 서로가 가장 아끼는 것을 서로 바꾸어 가집시다. 어떻소? 하하하!
나에겐 우소[?野 : 後日의 持統天皇] 공주와 오다[大田]공주가 있소. 이 둘은 내가 생명같이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보배들이오. 이들을 다 그대에게 주어 우리가 서로 장인, 사위 관계가 되는 것이오. 하하하! 그 대신, 그대는 그대가 가장 사랑하는 누가다[額田]를 내게 주시오. 그만하면 별로 밑지는 흥정은 아니지 않소?”

“자, 대해인! 여기에 우노와 오다가 나왔으니 보시오. 그래도 이만하면 예쁘지 않소? 으하하하!”

“천황 마마! 황공하옵게도 누가다[額田]의 몸은 더렵혀져서 저와의 사이에 도치[十市]라는 딸을 생산하였습니다.
도저히 천황께 바칠 수 있는 몸이 되지 않사옵니다. 바라옵건데 명령을 거두어 주옵소서. 제가 어찌 감히 데리고 살던 처를 천황께 바치오리까? 용서하옵소서. 그것만은….”

“염려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하시오. 누가다의 몸이 더렵혀지고, 또 딸을 낳았다 해도 모두가 그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므로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오. 하하하! 자, 우소 그리고 오다, 오늘부터 너희들은 이 대해인의 아내로서 모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어서들 인사드려라.”

대해인은 그의 아름다운 아내 누가다를 천지 천황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그동안 천황과의 협력 체제는 이처럼 어이없는 천지 천황의 무례한 행동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그 후, 대해인은 또다시 실라계의 세력을 모아 힘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서기 671년 1월, 천지 천황은 돌연한 병으로 정무를 보살 필 수 없게 되자, 황자인 대우(大友)가 태정대신(太政大臣)으로서 다시금 몰락했던 소아씨(蘇我氏)들을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하여 대해인의 세력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하였다.
서기 672년, 천지 천황이 46세를 일기로 죽고, 대우(大友)가 천황위에 올랐다. 대우왕은 천황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대해인 측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였다. 그는 대해인 측에 깊은 원한이 있는 소아씨들로 하여금 대해인을 정벌하도록 하였다.

“대해인이 실라 출신 국민들을 선동하여 정부에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음은 이미 천하에 알려져 있다. 그대 소아씨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대해인을 잡고, 나라가 평안할 수 있도록 공헌하라.”

6월 24일, 대우왕과 소아씨들은 대해인을 공격했고, 대해인은 부하 20명과 10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길야궁을 탈출하였다.

대우왕의 길야궁(吉野宮) 습격은 거의 완벽한 작전이어서, 대해인은 그의 주력군을 일시에 잃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날이 밝자, 대우의 근강군(近江軍)은 모두 밝은 웃옷을 입고 대해인의 뒤를 급히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화급히 도망치던 대해인은 이세로(伊勢路)의 감라촌(甘羅村)에서 사냥꾼 20인을 얻고, 이세국(伊勢國)에서 50필의 말을 얻고, 영록군(鈴鹿郡)에 이르러 다시 실라계 병사 500명을 얻었다.
대해인(大海人)은 우선 500명의 병사를 영록(鈴鹿)의 산길에 배치하여 근강군의 추격을 막도록 하였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미농국(美濃國)에서 3000명의 병을 급파하여 간신히 근강군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었다.

미농국은 주로 실라계의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대해인의 공로로 성공시킨 새잡기작전(돗도리 작전) 이후 그 지위가 매우 높아져 있었다.
그동안 일궁부의 용왕과 천지 천황[中大兄]의 협력으로 새 나라 일본국(日本國)의 건설에 실라인들도 대거 참여하여, 더 이상 본토(本土 : 韓半島)의 내란에 참여하지 않고 다같이 일본인으로 대동단결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백제인 중심의 근강조가 실라계의 영도자인 대해인을 제거하려 함으로써 또다시 일본 땅의 백제인과 실라인들은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대해인은 상명군가(桑名郡家)에 머물면서 동산도(東山島), 동해도(東海島), 동국(東國), 왜경(倭京), 축자(筑紫), 길비(吉備) 등에 사자를 보내어 모든 실라인들에게 병을 일으켜 주도록 요구하니, 내란(內亂)에 중립을 선포한 축자를 제외한 모든 실라계의 나라들이 군사를 보내 주었다.
특히 미장국(尾張國)의 국수(國守)인 소자부(小子部)의 연조구(連?鉤)가 병 2만 명을 이끌고 도착하였고, 8일 후인 7월 5일에는 근강조의 우전공팔국(羽田公八國)이 그의 아들 대인(大人) 등을 거느리고 항복하니, 이 대부터 수세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공세로 나가기 시작하였다. 호랑이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형상이었다.

가야(加耶)의 6왕자들로부터 시작된 공지(空地) 왜 열도(倭列島)에 대한 영토 경쟁은 곧이어 백제(百濟)의 등장으로 경합 시기에 접어들었다가, 천일창(天日倉)을 선봉으로 한 실라 세력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복잡하게 변하여 격렬한 각축장이 되어 버렸다. 그 동안 가우리는 일본 관동 지방(關東地方)의 넓은 땅을 소리도 없이 장악하였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九州]나 관서지방(關西地方)은 실라와 백제 그리고 가야 세력들이 자연히 몰려들 수밖에 없어서 피나는 충돌을 피할 수 없었는데, 초기의 이민 생활이 언제나 그렇듯이, 이들도 각각 그들 본국의 지원과 보호를 절대로 필요로 하였고, 자연히 본국의 전황(戰況)에 따라 이들의 세력 판도도 바뀌는 형편이었다.

한동안은 그런 대로 세력이 호각을 이루어 공존하려는 기운도 있었으나, 본국의 실라가 가야를 멸망시키니 실라를 원망하는 가야의 새로운 망명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백제편에 섬으로써 실라계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백제인들이 주축이 된 아스카 정부에 실라계의 참여는 무시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춘추의 새잡기 작전[鳥取作戰]이 대해인(大海人)의 결정적인 공로로 대성공을 거두어 소아씨들을 몰아 낸 후 실라계의 지위는 급격히 상승하였다. 따라서 대해인이 일본에 와 있는 모든 실라인들의 영웅으로 추앙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대우 천황(大友天皇)은 대해인을 멸망시키려 드니, 실라계는 이를 쳐다보고만 있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본국 실라가 남부여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시켰는데도 일본의 실라인들은 일궁부의 설득에 동의하고, 새 나라 일본 건설에 동의하였으며, 일본인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결의하지 않았던가!

일본 열도에 이민 와서 정착한 사람들은 모두가 한 배를 탄 같은 운명이라고 믿고 실라의 일본 침략도 저지하기로 결심하였는데, 돌연 백제인들이 또다시 실라인들을 핍박하려 든다고 생각하여 모든 실라 세력들은 그들의 힘을 모아 대해인을 따르기로 작정하였다.

이리하여 7월 2일, 대해인의 무서운 반격이 시작되었다.
대해인은 기신아폐마려(紀臣阿閉麻呂)에게 병 1만 명을 주어 백제의 본거지인 나라[奈良]를 공격하게 하고, 촌국연남의(村國連男依)에게 1만 병사를 주어 근강(近江) 지방으로 진격하게 하였다.

한편, 대우 천황도 대해인군을 격파하기 위하여 산부왕(山部王)과 소아신과안(蘇我臣果安) 등에게 수만 명의 군사를 주어 불파관(不破關)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런데 도중에 산부왕과 소아신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소아신과안이 산부왕을 살해해 버렸다. 이 때문에 병사를 진격시킬 수 없게 된 소아신과안은 견상(犬上)에서 후퇴하여 자살하였다.

7월 6일부터 17일까지 대해인과 대우 천황은 그들의 운명을 건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대우군(大友軍)은 세전교(勢田喬)의 서쪽에 진을 치고, 다리를 끊어 대해인군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대해인 측의 용장 대분군치신(大分君稚臣)이 강에 가교를 놓고 건너가 대우군의 본영을 습격했다. 대우군은 즉각 혼란에 빠졌고, 용장 지존(知尊)이 참살당하는 패전을 당했다.

대우 천황은 간신히 도망하여 율진강하(栗津岡下)로 이주하였다.
7월 23일, 대해인군의 맹장 남의(男依)가 계속 맹추격을 해 와 대우왕의 마지막 희망인 곡직염수(谷直鹽水)를 죽이니, 도망갈 장소가 없게 된 대우왕은 산전(山前)에 이르러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이로써 소위 임신대란은 끝났고, 실라계와 대해인이 일본의 대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실라의 장군 대해인(大海人)이 마침내 천황위에 오르니, 그가 바로 천무천황(天武天皇)이다. 그는 즉시 실라인의 골품제도를 모방, 실시하였고, 실라의 예를 따라 신사(神社)의 진흥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실라에 종속되기를 거부하였다. 이제부터는 본토의 식민 정치에서 벗어나 일본은 독립해야만 했다. 본토의 역사가 머릿속에 살아 남아 있는 한 백제, 가야, 부여인들은 실라인들을 미워할 것이기에 내란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본토의 역사를 망각시킬 수 있는 새 역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들의 출신지를 구별할 수 있는 모든 기록은 없어져야만 했다. 어떤 사정으로 일본 땅에 와 있든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신민(神民)들이어야만 했다. 천무 천황은 백제인 다장부(多蔣敷)의손자 안만려(安万侶)에게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러나 맨정신으로 역사를 개조하는 죄악을 범할 수 없었던 학자의 양심을 가진 안만려는, 천황의 토네리[舍人 : 시종]인 히에다[稗田]라는 28세 난 무녀의 입을 통하여 다시 옛 역사를 정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후세에 발견될 역사 왜곡의 오명을 교묘하게 히에다에게 덮어 씌웠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이다. 그러나 그들의 뿌리를 완전히 감추기에는 아직도 부족하여 더욱 철저한 역사의 조작을 명하니, 또다시 일본서기(日本書紀)가 만들어 졌다.

그 후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뿌리를 은폐하려는 노력을 애처로울 만큼 계속한다. 백인이 되어 보고자 아무리 얼굴을 씻고 화장을 하여도 한번 흑인으로 태어났으면 여전히 흑인일 뿐이다. 아무리 훌륭한 미국인이 되었다 하더라도 흑인은 여전히 흑인이고, 아무리 아프리카를 앝보고 멸시해도 그 곳은 여전히 흑인들의 고향일 뿐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간단한 이치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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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민교 222.104.131.165 2013-06-15

    통합판에 이것도 실리는건가요?

  • 최부건 118.41.219.169 2012-01-20

    반도나 열도나 모두 신라계가 장악하게 되는군요.. 묘한 일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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