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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쥬신제국사-연개소문

  개전(開戰) -1

연개소문이 가우리의 신크말치[太大莫離支]로 있던 당시의 주변국인
남부여, 실라, 왜의 상황이 다뤄져있는 대쥬신제국사 제3권의 내용입니다.
오래전에 저술하신 내용이어서 차후 밝혀진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으며
또한 출판된 도서를 촬영한 이미지를 사용하여 미흡한 점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김유신의 반간계가 예상 밖의 대성공을 거두어 가장 두려워하던 성충과 윤충이 제거되고, 흥수(興首)와 복신(福信)마저 파면되자, 남부여를 지탱하고 있던 기둥들이 모두 쓰러져 버렸다고 판단한 실라의 태종(太宗 : 김춘추)은 남부여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김유신을 불러 국가 총동원령을 내리게 하고 결전을 준비시켰다. 그 동안 훈련을 거듭했던 화랑군들을 포함하여 최소한 20만의 정예군을 동원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그 동안 김춘추와 동맹(同盟)을 맺기로 약속하고, 대대적인 군선 제조작업에 몰두하였던 당 태종은 가우리와의 전쟁에서 맞은 독화살의 후유증으로 끝내 죽고 말았고, 지금은 고종(高宗)이 왕위에 있었다. 백제 정벌의 준비를 끝마친 실라의 태종대왕은 태자 법민(法敏)을 장안성으로 파견하여 동맹군의 파견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 당시 당(唐)나라의 실정은 고종이 왕위에 있긴 하였지만, 병약하여 모든 나라의 정무는 고종의 왕비인 측천무후(測天武后)가 담당하고 있었다. 재빨리 현지 상황을 파악한 김춘추는 법민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측천무후에게 접근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법민은 무후(武后)에게 환심을 사기 위하여 아름다운 황금관을 만들어 그녀가 제일 신임하고 있는 당의 재상 왕주태(王周泰)와 접선하였다.

법민은 엄청난 뇌물을 왕주태에게 주고, 그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이 때, 당은 649년부터 654년까지 5년간에 걸쳐서 전쟁 배상 명목으로 가우리에게 빼앗겼던 산시[山西]와 산둥[山東]지구를 탈환하였다.
우유부단한 당 고종보다는 역시 왕주태를 통해 무측천황후(武測天皇后)에게 동맹군의 파견을 요청한 것이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고종의 후광을 업고 실질적으로 당나라를 통치했던 사람은 야망에 찬 여걸 무측천황후였다.
그녀는 무엇이든 천하 제일이기를 원했다. 그러나 북방의 패자는 역시 가우리였고, 지금까지 가우리와의 전쟁은 연전연패였다. 여성의 몸으로 가우리의 독화살에 숨을 거둔 당 태종 즉 시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고, 천하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싶은 욕망에 찬 여걸이었다.

그녀는 흔쾌히 실라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동맹군의 파견을 약속하였다. 당나라의 국운을 걸고 가우리와 백제(당나라는 아직도 남부여를 백제라 불렀다.)를 동시에 정벌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북방군은 설필하력(契苾何力)을 장군으로 직접 가우리를 공격하여 가우리군이 백제(남부여)를 구원할 수 없게 하고, 남방군은 소정방(蘇定方)을 대장으로 하여 실라와 연합하여 남부여로 쳐들어가도록 지시하였다.

무측천 황후의 요청으로 고종의 최종 명령이 떨어져서 드디어 설필하력과 소정방은 동시에 가우리와 남부여로 출정 명령을 받았다.

서기 660년, 실라와 당 연합군의 대백제 대전의 막이 올랐다. 실라 왕자 김인문(金仁問)은 내주(?州)로 가서 소정방(蘇定方)과 함께 13만 명의 당나라 최정예군을 거느리고 황해를 건너 덕물도(德勿島로 향하였다. 이 때, 당군의 대총관(大總管)은 소정방이 맡고, 우장군(右將軍)에 김인문(金仁問), 좌장군(左將軍)에 유백영(劉伯英), 부관(副官)에 풍사귀(馮士貴), 좌효위 장군에 방효공 등이 포진하였다. 한편, 당군과 연합 작전을 펼 실라 측은 제1군으로 태자(太子) 법민(法敏)이 5만 명을 이끌고, 전함 수백 척으로 미리 덕물도에 대기하여 당군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라의 기둥이던 국방장관 성충을 잃은 부여군의 사기는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심지어는 수많은 탈영병들까지 발생하였고, 당나라의 13만 대군의 응원을 받은 태종왕은 20만의 실라군을 합하여 총37만 명의 대군으로 일시에 숙적 남부여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갔다.

실라의 대각간(大角干) 김유신은 김품일(金品日), 김흠순(金欽純) 등의 장군들과 함께 이미 남부여의 절대적인 요충인 탄현(炭峴)을 통과하여 남부여의 소부리(所夫里 : 서울)인 부여성(扶餘城)을 노려보고 있었고, 태자 법민은 장군 진주(眞珠), 천존(天尊) 등을 거느리고 김인문과 소정방의 당군과 합류하여 기벌포를 향하고 진격하니, 탄현이나 기벌포는 모두 성충(成忠)이 마지막 유언으로 남부여가 꼭 지켜야할 요충지라고 왕에게 충고하였던 요새들이었다.

남부여의 소부리(서울)인 부여성에서는 이제야 깊은 밤의 연회를 파하고, 여러 신하들을 긴급히 소집하여 적병을 막아 싸울 방법을 의논하기 시작하였다.

“실라의 김유신이 감히 탄현을 넘어 쳐들어왔고, 또 법민이 당나라 군병을 끌어들여 바다로 쳐들어왔다 하는데, 어찌하여 경들은 이제야 나에게 보고를 하는가?
그래 우리 부여의 용맹한 기병대는 무엇을 하고 있기에 적병들이 부여성의 지척에 올 때까지 보고만 있었단 말인가? 대신들은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어서 방어할 수 있는 계책을 말해 보라.”

모두 술이 취해 정신이 흐릿한 의자왕의 중신들은 아무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군사 작전의 기초도 모르면서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이럴 때 성충(成忠)이 있었더라면….

의자왕은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였으나, 이미 귀신이 된 성충은 아무리 찾아도 돌아오지 않았다.

“역신 성충과 흥수가 말하기를, 탄현과 기벌포는 국가의 요충이라, 한 사람이 칼을 들고 막으면 만 명의 적군도 통과할 수 없다고 했사옵니다.”

“그러나 적병은 이미 탄현을 점령했고, 또 기벌포에 도착하여 있으므로 그 따위 죽은 자의 유언이 무슨 소용이 있사옵니까? 차라리 적을 내지로 끌어들여 독 안에 든 쥐를 잡듯 하면 실라와 당의 두 적을 다 분쇄할 수 있지 않사옵니까? 우리 남부여의 용맹한 군사들이 출동하기만 하면 적들은 머리를 감추고 도망하기 바쁠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아무리 어전회의(御前會議를 계속해도 입으로 적병의 진격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갑자기 정신을 차린 의자왕은 젊었을 때의 총기를 되찾으며 용맹했던 옛 장수들을 급히 불러들였으나, 그들의 대부분은 성충의 옥사에 충격을 받아 벼슬을 버리고 각각 그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없었다.
그렇다고 앉아서 나 ? 당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왕이 급히 주위의 장수를 찾으니 마침 좌평 의직(義直)이 있었다.

“좌평 의직! 그 동안 짐이 깊은 향락에 취하여 나라의 정사를 게을리 하였더니 오늘과 같은 국난을 맞게 되었다. 나와 같이 전쟁터를 누비고 다녔던 용맹한 장수들이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나가 버렸다. 그들을 다시 불러들여 사과하고 싶지만, 이미 적병들이 소부리(所夫里)에 접근하고 있어 나라의 운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도다. 젊은 장수들이 없으니 그대 의직이라도 다시 칼을 잡고 병을 몰아 적병들을 이 땅에서 몰아 내주기 바란다.”

“이 의직, 부족한 힘이오나 성은에 보답하여 죽음으로 이 나라를 지키겠나이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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