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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장 고려-몽골 연합대군 일본원정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 제1차 일본원정(日本遠征) 1

고려의 원종 앞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장도에 오르게 된 홀돈과 김방경은 1274년 10월 5일 이른 새벽, 합포(合浦:지금의 馬山)를 출항하여 제1차 일본 원정길에 올랐다.
1274년 10월 5일 오후 4시경, 여몽연합군 함대 900척은 대마도의 고모다하마(小茂田浜:佐須浦) 앞바다에 출현하였다. 드디어 제1차 일본 원정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로부터 독립한 이후 이처럼 대규모의 선단이 대마도 앞바다에 출현한 적은 없었다. 그동안 반도로부터 버림받은 이 저주의 섬 대마도는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온갖 만행을 일삼아 오던 자들이 하늘 아래에 면책 특권을 받은 유일한 성역으로 알고 있던 해적섬이었다.
갑자기 가우리 군단을 맞은 대마도 해적의 괴수 소스케구니(宗助國)는 즉각 졸개들을 소집하여 고모다하마 해안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고려 군단의 총사령관 김방경은 대마도 해적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거친 항해에 지친 병사들을 푹 쉬게 하고 있었으므로, 섬에 상륙한 병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10월 5일의 밤은 이렇게 양군이 대치한 채 긴장감만 도는 속에서 깊어갔다.

눈만 뜨면 해적질로 날을 지새웠던 해적들이었다. 해적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그들이 칼을 들고 덤벼들면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기에 바빴었음으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호기 좋게 고려의 상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고려군이 상륙을 마치고 전투 준비를 갖추기 시작하자 이를 기다리던 해적들이 해변가로 몰려들며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당시의 전투에서는 근대의 경우처럼 상륙하는 시점에서의 공격이 유리하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김방경 장군의 고려 병사들은 대부분 대(對) 몽골 전쟁을 경험한 바 있는 노련한 삼별초의 용사들이었다. 무질서하게 달려드는 해적들 따위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곧 단궁(檀弓) 공격형의 진을 갖춘 가우리군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을 듯이 화살을 날려 보내니, 정규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해적들은 일시에 고슴도치가 되어 죽어갔다. 그러나 천성이 악독한 해적들은 죽음을 영광으로 알고 악착같이 덤벼들었고, 계속하여 죽어가면서도 좀처럼 항복할 줄을 몰랐다.
결국 항복한다 해도 가우리군들이 악독한 강도 집단인 자신들을 그대로 살려줄리 없으니 차라리 해적답게 싸우다 죽는 게 더 낫다는 생각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것이다.

한 차례의 접전이 끝난 후 잠시 왜적들이 물러나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가우리군에 이어 상륙을 마친 몽골군의 도원수 홀돈이 이 전투를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
이때 홀돈(炘都)의 몽골군은 가우리군이 모르게 은밀히 수송해온 신병기들을 상륙시켰는데 그것들은 가우리군의 총사령관인 김방경으로서도 처음 보는 화포(火砲)들이었다.

화포라면 전에도 몇 번 본 일이 있었지만 이번에 새롭게 선보는 화포들은 완전히 새롭게 개량 개발된 신무기들이었다. 몽골군이 천하무적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신화포를 앞세운 홀돈의 몽골군은 의기양양하게 가우리군을 물리고 전선의 앞으로 나서 일렬로 진을 치고 재차 몰려드는 해적집단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여몽 연합군들이 고모다하마 해안에 상륙한 채 더 이상 진격할 움직임이 없자 대마도 해적의 괴수 소스케구니(宗助國)는 침공군들이 해적군단에 대하여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판단하고 즉각 기병 80기를 선봉으로 1000여명의 졸개들을 일시에 투입하여 총 돌격을 감행하였다.

이 때 한동안 해적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던 몽골의 군단장 홀돈 원수가 오른손의 황색깃발을 들어 화포의 발사 명령을 내렸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몽골군의 화포들이 달려드는 도적들을 향해 일제히 불을 뿜었다.

먼저, 이번전쟁에서 처음 선보이는 몽골군의 신병기 동화총(銅火銃)이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포탄을 발사하자 해적들의 최선봉 부대가 불시에 아비규환으로 변하며 처참한 주검들의 참극을 연출하였다. 너무나 갑작스런 동화총의 위력에 모두가 놀라 정신을 놓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있을 즈음 몽골군은 계속하여 로켓형태의 신화비아(神火飛鴉)를 무수히 발사하였다.

신화비아(神火飛鴉)는 마치 제비처럼 하늘을 날아가 적진의 대오 속에 떨어지며 폭발하였는데 그 엄청난 파괴력은 지금까지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몽골군의 신무기의 위력 앞에 대마도 해적들은 혼비백산하여 어지러이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몽골군의 화력에 놀라 당황한 자들은 피해 당사자인 왜적들뿐만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화포의 위력을 유심히 관찰하던 가우리군의 사령관 김방경 도독은 가우리군도 서둘러 화포를 개발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몽골의 전투력에 깊은 감명을 받은 김방경 대도독은 계속되는 왜적의 토벌전을 진두지휘 하면서도 몽골군의 새로운 전투방법을 벤치마킹하는데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고, 이를 토대로 가우리군의 조직을 개편해 전투능력을 향상 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대마도 해적을 모두 소탕하는데는 약 9일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마침내 연합군이 해적들의 소굴을 모두 불태워 버리니 대마도 섬 전체가 불타는 듯 하였다. 이제 당분간 해적들이 재기하기는 불가능할 것이었다.

대마도의 해적 소탕을 성공리에 끝낸 여몽 연합군의 다음 목표는 일기도(壹崎島)였다. 10월 14일 오후 4시경, 여•몽 연합군은 순풍을 타고 일기도 서북안의 사카기(板木 : 지금의 勝本) 포구에 도착하여 대마도의 경우처럼 그날 밤은 배 위에서 보내면서 피로를 풀고, 다음날 아침 상륙을 마치자마자 곧 공격을 개시하였다.

일기도의 괴수가 신성촌의 히즈메성(桶詰城)에 의지하여 완강히 저항하자, 이에 분개한 몽골군은 모든 철포(鐵砲)와 독화살을 무자비하게 쏘아대었고, 오후가 되어 성문을 깨뜨리는데 성공하였다.
완강히 버티던 일기도(壹崎島)의 해적성(海賊城)이었지만, 일단 성문이 깨지고 여몽 연합군이 밀려들자 일시에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말았다.

대체로 일본의 해적들 중에서도 일기도와 대마도 해적들이 가장 악랄한 만행을 많이 저질러 왔다. 옛 기록에 의하면, 이들은 분탕질 중 임산부들을 잡아다가 그 뱃속의 태아가 남아있지 여아인지 서로 내기를 걸고 임산부의 배를 갈라 태아의 성별을 확인하며 즐겼다고 한다. 이들은 단순히 식량을 얻기 위한 해적질이 아니라 살생을 즐긴 극악무도한 해적들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벼르고 별렀던 일이었기에 고려군도 이번 기회에 그 뿌리를 완전히 뽑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눈에 보이는 모든 해적들을 닥치는 대로 살해하였다. 일기도 소탕전은 이처럼 철저하였다.

신화비아(神火飛鴉)

신화비아(神火飛鴉)

비도전(飛刀箭)

동화총(銅火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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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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