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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1장 명량대첩
명량대첩(鳴梁大捷) 1
우리는 지금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군 제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순신이 불과 13척의 전선만으로 일본의 정예 함대 200여 척과 10만 대군을 격멸시키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신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 명량해전이야말로 그 동안 사가(史家)들이 손꼽아 온 임진왜란 3대 대첩(大捷)을 수백 배 뛰어넘는 진정 위대한 승리(勝利)로, 이순신 제독의 절묘한 용병술과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확연히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민족이 배출한 위대한 제독 이순신은 우왕 이연의 유치한 적장 체포명령에 조선 수군의 목숨을 걸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서 파직당하고, 동시에 죄인이 되어 서울로 끌려갔었다. 그리고 백성들로부터 흠모(欽慕)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것을 질시한 바보왕 이연은 이 기회에 그를 죽일 작정으로 혹심한 고문을 받게 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죄 없는 충신에게 누명을 씌워 억지로 죽인다면 백성들의 민심은 왕으로부터 떠날 것임을 깨달았다.

또 다시 곤경에 빠진 왕의 입지를 구해준 것은 판부사 정탁이었다. 교활한 왕은 정탁의 이순신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탄원을 받아들여 신하의 의견을 존중하는 체하며 1597년 4월 1일, 이순신을 감옥에서 석방시켰다.

이때 이순신은 혹독한 고문으로 온몸을 추스를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왕은 그를 자유롭게 놓아두지 않고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1)시키며 고행을 강요하였다.

이는 만약 그를 자유롭게 풀어줄 경우 그동안 왕을 떠난 민심이 이순신을 구심점으로 뭉쳐 왕에 대한 분노로 폭발할 가능성을 걱정하여, 그를 왕의 영향력이 직접 미칠 수 있는 곳에 두고 항상 감시하려는 술책이었다.

7월 18일, 그러니까 원균의 함대가 전멸당하고 이틀이 지난 뒤 새벽에 원수부의 군관 이덕필(李德弼)과 변홍달(卞弘達)이 찾아와 조선수군의 전멸 소식을 이순신에게 전하였다.
곧이어 도원수 권율이 원수부의 참모들을 대동하고 이제는 졸병 신세인 이순신을 찾아왔다. 해군의 전멸 소식을 듣고, 말단 부하로 백의종군하는 이순신 앞에 나타난 권율은 마치 그 자신이 죄인이라도 된 듯 말없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구국의 대영웅을 죄인으로 몰아 백의종군시키고 있음을 사과하고 있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이 난국을 타개해 줄 사람은 이순신 밖에 없으니 그에게 난국 타개의 방안을 묻는 뜻이기도 하였다.

“도원수께서 어찌하여 이 곳까지 행차하시옵니까? 만약 원균이 조선함대를 파멸시킨 일로 오셨다면 그 소식은 이미 이덕필을 통해 알고 있사옵니다.”
“이렇게 앉아서 한숨만 쉬고 있다고 전멸당한 수군들이 다시 살아서 돌아오리까. 이 몸은 비록 원수 밑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사오나, 만약 원수께서 허락하여 주시면, 제가 직접 나서서 우선 현재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해 보고 해군의 수습책을 강구해 보겠나이다.”

이순신의 대답을 들은 조선군의 참모총장 권율은 크게 감동하였다

“그 동안 조정으로부터 받은 고초는 다 잊으시고 다시 한번 나서서 이 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시오. 차마 염치가 없어 부탁하기조차 송구스럽지만, 만약 수군이 왜병들을 막지 못하면, 그들의 10만 대병이 서해를 돌아 곧장 한강으로 진입하여 서울은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오. 말로는 천병(天兵)이라는 명국군이 와 있지만 그들은 왜병의 총소리만 들어도 도망치는 오합지졸에 지나지 않소. 그런데도 우리 상감께서는 나라의 운명을 명군에게만 의지하려 하시니 정말로 답답합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상감을 탓할 수도 없고 그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해야 하는 상감의 백성이 아니겠소.”

이리하여 우국충정에 불타는 이순신은 과거 통제사 시절 그의 밑에서 종사했던, 그러나 지금은 원수부에 속해있는 9명의 군관들을 차출하여 대책반을 편성하였다.
그는 우선 남도로 내려가 현장의 실상을 조사하여 원수부에 먼저 보고 한 후, 그 때 가서 다음 계획을 세우기로 정하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때, 어쩌면 운 좋게 살아남은 남은 전선들이 하동(河東)의 노량진(鷺粱津)에 정박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소문을 듣게 된다. 갑자기 용기가 솟은 이순신 일행은 급히 말을 몰아 노량진을 향하여 달려갔다.

지금 이순신에게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맨손으로라도 조선해군을 시급히 재건하여 10만 왜병들의 서해 진출을 막아내고 고통과 불안에 떠는 불상한 백성들과 존망의 기로에 서있는 이 나라를 구해내야 한다는 황당한 사명감만 있을 뿐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맛비를 맞으며 진주에 들러 진주 부사와 작전을 논의하고 4일 만에 142km를 달려 7월 21일, 목적지인 노량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완전히 망실당했다던 조선수군의 판옥선 12척이 정박되어 있었다. 이 전선들은 경상우수사 배설이 원균 함대가 전멸 당하던 날 밤, 미리 겁을 먹고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함대를 이탈하여 남겨진 것들이었다. 보통의 경우 배설은 무단 탈영죄로 군법에 의하여 사형당할 중죄인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전선 12척을 끌고 원균 진영을 탈영한 덕분으로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게 된 것으로 기록한다.

이순신이 12척의 패전선을 점검해 보니 대부분 긴급한 수리가 필요했다. 이때 이순신이 원수부에 올린 보고서 내용은..
① 경상 우수사 배설은 전의를 상실하고 전쟁 공포증에 걸려 있음.
② 군함 1척당 190명이 필요한데 현재 겨우 90명 이하로 격감되어 있음.
③ 군량미가 부족하여 12척의 함대 장병들이 기아 상태에 있음.
④ 전선 함포용 화약, 피사체 등이 절대 부족한 상태임.

한편, 왕 이연의 명령으로 원균의 기함에 동승하여, 원균의 행동거지를 감시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종군했던 선전관 김식은 견내량에서 원균과 함께 거제도 섬으로 상륙하여 왜병들에 쫓겼으나 몸체가 비대하고 둔하여 적에게 잡혀 도살당한 원균과는 달리 약삭빠르게 몸을 숨겨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7월 22일, 원균의 조선해군이 전멸당한 치욕의 그날로부터 꼭 6일째 되는 날, 김식은 서울로 돌아가 왕 이연 앞에 꿇어앉아 울면서 원균 함대가 괴멸하던 과정을 소상히 보고하였다.

우왕(愚王-어리석은 왕) 이연은 김식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순신의 지휘하에서는 단 한 차례의 패전도 몰랐던 조선의 막강 무적함대가 아니던가? 적어도 군선에 있어서만은 배의 조선기술이나, 기동력 그리고 함재포의 화력면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군선이 일본의 군선들에 비하여 월등한 성능을 가졌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이순신의 연전연승도 그의 탁월한 전투수행 능력에 있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조선군선의 우수한 성능에 기인(起因)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왕(愚王)이었다.

더구나 원균에게는 충청도 함대까지 참가시켜, 이순신이 단 한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조선해군 사상 최대규모인 268척의 꿈의 대함대가 있었는데, 그 모두를 단 한번의 해전으로 모조리 수장(水葬)시켜 버렸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만약 조선의 함대가 모두 사라졌다면 일본의 대군이 서해안을 거슬러 올라 곧바로 한강으로 진격해 올 것인즉 그러면 또다시 서울을 비우고 피난할 준비라도 서둘러야 할 것인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한 우왕 이연은 급히 대신들과 비변사의 당상관 회의를 소집하여 사후 대책을 의논하였다.
이 회의 결론은 한시바삐 이순신을 복직시키라는 것이었다. 구국의 영웅을 죄인으로 몰아 죽이려고까지 했던 원흉 이연 왕은 이순신을 다시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이순신 말고 다른 인물은 또 없을까. 왕의 마음을 읽는데 도가 터있는 신하들도 이제와 또다시 이순신을 추천하여 왕의 독한 심기를 건드린다는 것이 곧 그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순신만큼 그 능력이 검증된 인물은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리다가 왜적의 군선들이 마포나루에 상륙이라도 해온다면 어찌할 것인가?

마침내 파렴치한 왕 이연은, 서기 1597년 7월 23일자로 된 이순신의 삼도 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임명장에 서명하였다.

이때, 이순신은 진주 땅 운곡(雲谷)을 거처 정성(鼎城)에 이르러 관군의 방어 준비에 취약점의 유무를 살피고 있었다. 이곳은 왜군이 전라도를 침공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전략적인 요충지로서, 이순신의 지략을 신뢰하고 있던 도원수 권율의 특별한 부탁을 받고 유사시에 대처할 방어책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1) 백의종군(白衣從軍)
백의종군의 사전적 의미는 벼슬없이 군대를 따라다니며 싸우는 것을 말한다. 이는 왕의 눈에 벗어난 정치인들이 귀양을 사는 것과 같은 의미로, 이연 왕의 미움을 산 제독을 죽여서는 백성들의 여론이 오히려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하여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그 대신 군대의 최하위급으로 좌천시켜 그를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의 짐을 지우면서 결코 군대의 조직을 벗어날 수 없게 한 이연 왕의 야비한 복수의 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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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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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환 218.154.62.156 2007-10-25

    조선(쥬신말고)왕들은 거의 다 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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