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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6장 용이 물을 얻다
원균에 관한 진실

요즈음에 들어 원균을 영웅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쓸데없는 논쟁거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혼동시키고 있어 할 수 없이 몇 가지의 핵심사항만 집어보고 넘어가기로 한다.

첫째, 원균이 비록 해장(海將)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육장(陸將)으로서는 조산만호 부령부사 등을 역임하면서 여진족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원균의 지지자들이 원균을 밀어 전라좌수사로 천거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전력을 다할 때 사간원(司諫院)2)의 탄핵을 받게 되었는데, 이때 탄핵의 사유가 원균이 6진에 근무하던 시절, 세운공이 아무것도 없고 대신 범한 죄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에 원균을 지지하던 서인들이 원균을 변호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해 보았으나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의 공적을 찾을 수 없었기에 사간원의 탄핵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둘째, 조정에서는 원균의 비중을 이순신보다 크게 보아 그를 전라좌수영보다 규모가 큰 경상 우수사로 임명했다는 주장들이 있다.
이런 주장들은 얹듯 듣기에 그럴 듯하지만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 밝혀진 내용으로 보아 동인인 유성룡의 천거로 발탁된 이순신을 동인계로 보고 동인을 견제하여 균형을 마치기 위하여 서인계인 원균을 나중에 경상우수사로 발령 내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셋째, 원균이 전쟁발발하기 불과 2개월 여전에 부임하였으므로 전쟁준비에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2개월여의 시간이 결코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처럼 충분치 못한 시간에 그가 경상우수영을 바로 세우는데 무슨 역할을 하였는가에 있을 것이다.

여기서 또다시 사간원의 장계가 밝히고 있는 사실들을 종합하여 보면, 원균이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한일이 군사에게서 군포를 받고 사사로이 챙기는 것이었고, 군졸들을 혹독하게 다루어 이들을 도망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원균은 경상우수영에 부임해 온 이후 두 달 내내 술만 퍼먹고 단 한번의 수전훈련도 시행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로 인해 나라의 운명이 멸망으로 치달을 뻔 했다는 점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통하는 것은 사람이든 나라든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일 뿐 나라를 지켜야 할 사람으로서 그가 저지른 실수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될 수 없는 것이었다.

2) 사간원(司諫院)
조선시대 국왕에 대한 간쟁(諫諍)과 논박(論駁)을 담당한 관청. 사헌부와 함께 대간(臺諫), 홍문관(弘文館)·사헌부와 함께 삼사(三司), 형조(刑曹)·사헌부와 함께 삼성(三省)이라 하였다.
사간원의 임무는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화요직(華要職)으로 인정되어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이 강직한 사람 가운데서 선발하였고, 교체시에도 지방관으로 폄출하지 않는 특전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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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남기기
  • 세조 124.60.84.104 2007-09-26

    -ㅅ-... 역사는 아무도 모릅니다. 역사는 승자의 편 ㄱ- 겨우 종이 몇쪼가리로 판단하지마요 ㄱ-

  • 이대홍 211.194.127.153 2007-08-19

    원균이라는 인간을 두둔하는 것 자체가 식민사학을 변론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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