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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7장 왜적래습(倭賊來襲)
왜적래습 2

새벽안개를 뚫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지휘하는 제1군 18000명은 빠른 속도로 부산포 상륙작전을 마쳤고, 속수무책으로 언덕 위의 부산진성에서 왜적들의 상륙을 지켜보던 정발 첨사는 적의 규모가 엄청난데 경악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부산진 혈전도 (1592년 4월12일)

이때 상륙한 고니시의 제1군은 7000명 부하들과 유키나가의 사위인 대마도주의 아들 요시토모(宗義智)의 5000명, 마쓰우라 시게노부(松浦鎭信)의 3000명,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의 2000명, 오무라 요시사키(大村喜前)의 1000명, 고지마 스미하루(五島純玄)의 700명 등 총 18000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래 조선의 속령이었던 대마도는 일본과 조선의 눈치를 살피며 살던 중 이번에 강력한 히데요시 편에 붙어 함께 이 전쟁에 참가하였는데 제1군에 소속된 대마도주의 아들 요시토모가 부산진성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안내에 따라 유키나가의 제1군은 거침없이 부산진성을 공격할 수 있었다.

무조건 항복하라는 유키나가의 협박에 분노한 정발 첨사는 6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7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진의 선두에 서서 결사적으로 왜적의 진공을 막았다. 그러나 왜병들은 조총으로 무장하여 재래식 활로 맞선 조선군의 결사적인 항전을 무색하게 하였다.

부산진성의 위급상황을 알게 된 다대포 첨사 윤흥신(尹興信)은 정발을 지원하기 위하여 달려와 왜적들과 백병전을 전개하며 노장 정발과 함께 최후까지 사투를 벌이다가 결국 700명의 병사들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러나 모든 조선의 무장들이 다 영예스럽게 나라를 지키려 생명을 바친 것은 아니었다. 부산진성 수비에 큰 책임을 지고 있던 경상 좌수사 박홍(朴泓)2)은 엄청난 왜병에 미리 겁을 먹고 비겁하게도 동래(東萊)로 몰래 도망쳐 버렸다.

부산진성에 갑자기 총 소리와 함성 소리가 멎었다. 정발 첨사를 비롯한 700명의 조선 병사들이 모두 전사한 것이다.

개전한지 불과 2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 때 일본측에서 아침 해가 솟아올랐다. 왜병들의 만세 소리는 바다 건너 그들의 대추장인 히데요시의 귀에까지 들릴 듯 하였다.
서전을 승리로 장식한 고니시 유키나가는 곧바로 병사들을 수습하여 부산진성의 본진인 동래(東萊)로 향하였고, 그 날 오후에는 동래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동래 부사는 송상현(宋象賢)이었다

왜병의 부산진성 침공을 알리러 왔다던 박홍은 왜군이 동래성으로 몰려들자 또다시 모습을 감추고 말았고, 동래성의 경상좌병사 이각도 겁을 먹고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송상현과 함께 양산군수 조영규(趙英圭), 홍윤관, 송봉수, 노개방 등의 장수들은 모두 동래성을 사수하며 끝까지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고 만다.

조선의 비겁한 장수들 중에서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박홍은 가장 비열한 자의 표본으로 이자의 무책임한 도주로 조선은 초기에 적을 진압할 수 있는 기회를 모조리 상실하게 된다.

왜적들이 부산진과 동래를 일거에 함락시킨 사실은 원균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사실 대외 정보를 모조리 독점하고 있는 조정에서 논의하고 분석하여 국왕의 이름으로 왜침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국론을 발표하였으니, 그 말만 믿고 지난 2개월여를 안심하고 허송세월하였던 원균이었다.
4월 18일, 경상 관찰사 김수는 원균에게 즉각 출동하여 왜적들을 쳐부수라고 명령을 발한다. 이제 원균은 더 이상 그에게 부여된 책무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원균은 즉각 8관 16포의 수령들과 병부에 있는 병사들을 모두 소집하도록 긴급명령을 내렸다.
경상우수영은 제포, 옥포, 평산, 지세, 영등, 사량, 당포, 조라, 적량, 안골 등 8관 16포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큰 전함(판옥선) 44척과 협선(보조선) 29척 등 총 73척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제 경상우수영 내의 전함은 거의가 형편없이 파손되었고, 그 장비 또한 녹이 슬어 전투에 사용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 기동할 수 있는 전선은 73척 중 겨우 3, 4척에 지나지 않았고, 병사들도 1만 2천명의 군적에 비하여 겨우 수백 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만 명의 왜놈들이 수백 척의 군선을 이끌고 이 곳으로 진격해 오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우물쭈물하다가 이 곳이 적에게 유린되기라도 하면, 지난 200년 동안 이 곳에 보관하여 오던 모든 재물과 군사 기밀 문서들이 고스란히 왜놈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원균이 점검하여 보니 남아 있는 군선들 중에도 조금만 수리하면 쓸 만한 것이 많이 있으므로 그것들을 그대로 왜놈들에게 넘겨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4월 19일, 경상도 사령관으로부터 적을 요격하라는 명을 받고 마음이 어지러워진 원균은 왜적들이 금방이라도 쳐들어올 것만 같은 두려움에 떨며 마침내 관고(官庫)를 불태워 모든 군사 기밀 문서를 없애 버리고, 경상우수영 함대 중 전함(판옥선) 40척과 협선 17척 등 모두 67척을 스스로 파괴하여 바다에 수장시켜 버렸다. 그리고 불과 4척의 판옥선만 이끌고 오아포 우수영을 빠져 나와 왜적과 싸우기는커녕 사천(四川)으로 도망쳐 숨었다.

2) 박홍(朴泓)
박홍은 경상좌수사로 판옥선 75척과 협선 등 모두 백여척이 넘는 대함대와 해군 12000명을 거느리고 있었으면서도 왜적을 맞아 해전을 벌이기는커녕 몰래 야반도주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박홍은 도망치기 전에 부하들을 각 수영(水營)에 보내 왜침을 통보하기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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