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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5장 조선의 비극, 바보왕 이연(朝鮮의 悲劇 愚王 李淵)
조선의 비극 우왕(愚王) 이연 1

이때 조선 통신사가 전달해준 국서에서 조선왕은 “짐(朕)은 각하(閣下)가 일본국 60여 주를 평정하고, 또 왜구들이 잡아 간 조선의 포로들을 속히 송환 시켜 준 점에 대해 크게 치하하는 바이오.
앞으로도 양국이 친선을 더욱 두터이 하기를 바라오.”라는 극히 의전적인 수사의 나열이었다.

이에 대해 히데요시는 통신사들에게
“나는 일본 천하를 통일한 사람이다. 나는 지금 병을 일으켜 명나라를 칠 생각인데 그 중간에 조선이 가로놓여 있다.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공식적으로 요구하겠다. 조선도 우리 일본과 함께 명을 쳐서 그 넓은 중원 천지를 서로 나누어 다스리는 것이 어떨는지… 만약, 명과의 친선 관계로 전쟁이 곤란하다면, 적어도 우리 일본군이 귀국을 통해 명을 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줄 수는 없겠는지?”

히데요시의 말에 놀란 통신사는
“이번에 우리 조선이 사절단을 파견한 것은 귀국이 두려워서가 아니외다. 각하의 일본 평정을 축하하고 앞으로 공손히 옛 정의(情誼)를 가다듬으러 온 것이오. 만약 각하가 명을 치고자 한다면, 그것은 일본과 명의 문제이지, 우리 조선이 끼어들 일은 아닐 것이외다. 귀국에도 큰 배가 많을 것이니, 바다로 해서 명을 치면 될 것이오. 우리 조선은 그 동안 명과 서로 친선하며 지냈으므로 우리가 그들과 전쟁에 끼어들 하등의 이유가 없소이다.”라며 거절하였다.

1591년 당시 조선의 임금은 이연(李淵•宣祖)이었다. 엄청난 국난을 앞두고 이처럼 미련스러운 임금을 나라의 최고 통치자로 모시게 된 조선은 그 출발부터가 비극적이었다.

왕 이연은 대단히 겁이 많았고 변덕스러웠으며 의심 또한 많았던 위선자로서, 극심한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사에 자신이 없는 유약한 왕 이연은 결과가 나쁘게 나타난 정책의 책임을 모조리 그 정무의 기안자에게 뒤집어 씌우는 버릇이 있었다.

따라서 어전회의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것은 곧 목숨을 거는 위험한 행위였다.

이이(李珥)

불과 7년 전(1583년), 대유학자 이이(李珥)가 앞으로 10년 내에 큰 전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니 10만 병력을 길러 대비해야 한다고 거듭 소청하였으나, 이연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군병을 기르면 왕권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성계의 가르침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둔한 이연에게도 한 가지 특별한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정사를 논함에 있어서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그 주장을 하는 자의 반대편 당파 인사가 대신하도록 유도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교활함이 그것이었다.
따라서 이때의 극심한 당쟁은 자연 발생적이라기 보다는 왕 이연의 정치적 술수에 말려든 미련한 선비들의 작태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1591년(선조 24년) 3월 초순, 조선 통신사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 일행은 1년 만에 마치 수수께끼와도 같은 왜국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그 동안 궁금했던 왜국 정세에 관한 공식적인 보고회의를 겸한 어전회의가 열려 왕 이연을 비롯하여 영의정 이산해(李山海), 좌의정 유성룡, 우의정 이양원(李陽元) 등 기라성 같은 대신들이 모두 참석하였다.
정사(正使) 황윤길(黃允吉•西人)이 먼저 충격적인 공식보고의 막을 열었다.

“신, 황윤길 아뢰오. 왜놈들의 추장은 풍신수길이라는 자이온데, 이번에 그 자가 정식으로, 명을 정벌하고자 하니 우리 조선의 국도를 통과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달라고 하였사옵니다. 만약, 조선이 협력하지 않으면 곧바로 전쟁만이 있을 뿐이라고 하는 바, 지금부터라도 즉시 군병을 징집하고 성을 고쳐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할 줄 아옵니다.”

정사의 보고가 끝나자 뒤이어 서장관(書狀官) 허성(許筬)이 뒤를 이어 보고서를 올린다.

“지난 1년간 일본 땅을 여행하며 왜놈들의 동태를 유심히 관찰하였는바, 왜국 땅 구석구석이 전쟁 준비에 광분하고 있음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사옵니다.”

지금까지 통신사들의 놀라운 보고를 듣고만 있던 왕 이연의 얼굴에 돌연 불쾌한 표정이 떠올랐다.

“짐은 경들의 말을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도다. 태조께서 개국하신 이래 200년 동안 어느 나라도 감히 우리 조선을 넘보지 못했다. 근래에 그리도 극성이던 대마도 해적들도 스스로 조선의 번국이 되어 나라가 태평성세를 맞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갑자기 경들이 왜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는데, 왜란이 있을 것이라 하여 민심을 어지럽혀 놓은 뒤, 만약 왜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민심은 또한 누가 수습할 것인가? 그럼 부사 김성일도 정사나 서장관처럼 왜놈들이 쳐들어 올 것이라 보는가?”

그러면 무슨 이유에서 이연 왕은 통신사들의 보고를 의심하고 있었을까? 옆의 지도는 당시 이연 왕이 매일같이 들여다보던 지도로서, 그의 지리에 대한 상식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지도 한복판에 서울이 턱없이 크게 자리 잡고 있으며, 멀리 오른쪽 아래에 대마도가 있고, 그 오른편에 역시 대마도 크기만 한 일본이 위치해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지리 상식을 갖고 있었으니 일본이 감히 조선을 침략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왕 이연은 자신의 명령으로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온 통신사들의 보고를 가로막고 좀 더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밝힌다.

“설사 침략이 있다 해도 그 동안 수십 차례나 겪었던 대마도 해적 수준을 넘지 못할 터인데 무엇 때문에 민심을 불안하게 하면서까지 10만 병사를 양성할 필요가 있겠는가.”

왕이 정사(正使)에 황윤길(黃允吉•西人)과 서장관(書狀官) 허성(許筬)의 보고를 접수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먼저 밝히자 눈치 빠른 부사(副使) 김성일(金誠一•東人)은 더 이상 왕의 의견에 반하는 진술이 위험을 부를 수 있음을 깨닫고 급히 말을 바꾸었다.

“신, 부사 김성일 아뢰오. 정사와 서장관의 발언에는 큰 과장이 있나이다. 저 역시 왜국의 추장 풍신수길을 만나 보았지만 그 자는 눈빛이 마치 쥐새끼 같아서 별로 신통치 않은 인물로 보였사옵니다. 그 따위 위인의 말을 듣고 조선이 움직인다면, 왜인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옵니다. 공연한 소문에 민심이 소란해지는 일이 있을까 두려우니 상감께서는 왜인들의 망언에 현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왕 이연의 눈치를 살피던 부사 김성일은 반대파인 정사 황윤길을 곤경에 몰아넣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거짓 보고를 하였다. 드디어 왕 이연이 기다리고 있던 대답이, 동인인 김성일의 입을 통하여 나왔다
이제 왕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의견을 채택하여 그것을 국론으로 선포하면 되는 것이다. 설사 일이 잘못된다 하여도 그것은 의견을 제출한 신하의 잘못이지 왕에게는 하등의 책임이 없는 것이다.

“옳다. 부사 김성일의 말이 옳도다. 김성일은 과연 선사(善使)로다. 짐은 부사 김성일의 노고를 치하하고,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공로를 인정하여 특별히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 당상관)를 제수하노라.”

이것으로 조정의 국론은 정해졌다. 한번 정해진 국론을 재론한다는 것은 곧 왕 이연에게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목숨을 보존할 수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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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인 121.188.120.69 2014-03-17

    조선왕조실록을 조금이라도 참고했는지 의문이 가는 글이네요...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 김민수 211.216.77.33 2007-11-05

    원래 고려가 남아있었으면 우리가 일찍개방해서 강대국이 되고 만주와 옛고토를 모두 찾았을꺼라는 예기가 있습니다. 또 조선이 정조가 수원으로 천도했으면 엄청나게 발전할수 있었다는군요.

  • 임명환 218.154.62.156 2007-10-14

    김형용님, 과거의 단군조선이 있는데 옛조선을 古조선으로 만들고, 후의 조선을 조선으로 만드는 국가가 어딨습니까...몇왕국이라던지 후라고 붙이죠...그러니 이씨왕조라 하는 겁니다

  • 김형용 61.72.245.139 2007-09-13

    본 글에서 선조를 자꾸 이연이라고 하니 이글의 원 필자는 어드러한 사관을 갖고있는지 궁금합니다.

  • 김형용 61.72.245.139 2007-09-13

    과거 조선을 이씨왕국이라고 하는 친일사관이 있었는데, 이는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며, 조선이 한민족의 국가라고 존중하기보다는 "이씨"의 개인적인 왕국임을 은연중 강조하고, "조"자를 붙이는 황제는 오로지 일본의 천황만이 가능하다는 의도하에 그러하였는데,

  • 이지희 211.117.162.233 2007-09-04

    조선국왕이 자기를 일커을때 과인이라고 하지 짐이라 하지 않습니다.그리고 각하라는 명칭은 일본메이지 유신 초기에 만들어진 한자조어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전쟁준비는 임진왜란 직전까지 했습니다.

  • 임명환 218.154.62.156 2007-08-01

    솔직히 이성계도 옛날부터 맘에 안들었어....그런데 생각해보니 쥬신이라 이름지은 것도 원래 민심을 잡기 위해서인줄 알았더니 결국 저 멍청한 중화족한테 하사받은 똥같은이름이었구나

  • 이대홍 211.194.127.153 2007-07-30

    역시 이씨조선 아니랄까봐 대단히 멍청한 자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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