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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8장 이순신함대
이순신 연합함대(聯合艦隊) 제4차 출동1

7월 13일, 제3차 출동에서 귀영한 이순신 함대는 즉시 제4차 출동을 위해 폭약 등 군수품 조달에 돌입하였다. 전라 우수사 이억기는 비교적 이순신 제독의 깊은 뜻을 잘 이해하는 편이어서 앞으로의 전략을 수립에 대하여 깊이 의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즈음, 조선의 국왕 이연은 적이 평양으로 접근해 오자, 또다시 도망하여 의주에 머물면서 여차하면 아예 나라를 버리고 중국으로 넘어가 목숨을 구하려고까지 하였다.

만의 하나 이 비겁한 왕이 저 혼자만 살겠다고 정말 중국으로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침략군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것은 물론이고 그 반대로 그래도 그를 국왕이랍시고 쳐다보며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의 배신감은 어찌 추스릴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국가의 존망이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리고 있을 때 그래도 국왕이 중심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 주어야할 것이 아닌가? 이럴 때 왜적의 총 본진이 있는 부산이라도 공격하여 국왕의 자신감을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이것이 구국충정의 의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순신의 결연한 각오를 들은 이억기는 적의 본영을 친다는 이 대담하고 위험스런 작전에 같이 목숨을 걸고 이순신의 뜻에 따르기로 동의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왜군의 본영인 부산에는 적어도 500여 척 이상의 해군 전투선단이 정박하고 있으며, 육상의 부산진에는 육군 정예병 약 7만 명 정도가 따로 주둔해 있었다.
또한 그들은 왜성을 쌓고, 언덕 위에 무수히 많은 육상 포대를 설치해 놓는 등 철저한 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이순신 제독이 신출귀몰의 신장(神將)이라 하더라도 조선의 삼도 연합함대 80여척만으로 가까이 접근해 들어간다는 것은 곧 죽을 자리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임진년 8월 1일, 전라 우수사 이억기는 전함 40척과 협선 52척을 이끌고 여수 앞바다에 도착했다.

이리하여 이순신은 전라좌수영의 전함 34척과 협선 40척을 합쳐 전후 최대의 연합함대를 편성하고 23일간 합동 훈련을 실시하였다.
처음부터 부산 침투를 염두에 둔 훈련이었으나 병사들은 그 의미를 몰랐다.

위 지도는 이순신 연합함대가 전라좌수영을 떠나 부산에 이르는 동안의 과정을 순서대로 설명한 것이다.

8월 24일, 그 동안 호랑이의 굴속으로 진입하기 위한 특공 훈련을 거듭해 온 이순신은 드디어 연합 함대에 출진명령을 내렸다.

9월 1일, 오후 3시 30분경, 초량목(草粱項)을 통과한 이순신 함대사령관은 멀리 부산진에 무려 470척의 일본 대함대가 밀집하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조선에 침입한 일본 함선이 총집결해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 제독의 연합함대가 81척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적의 규모는 6배에 달하였다.

▲ 이순신 함대 부산포 공략도

만약 이대로 물러서면 적은 사기충천하여 추격해 올 것이고, 그리되면 천하의 이순신이라 하여도 6대 1의 해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적선들은 공포의 이순신 함대가 대담하게 돌진해 오자 마치 고양이를 만난 쥐새끼들처럼 겁에 질려 노려보고만 있을 뿐 감히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병법에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 했다. 이순신은 함상 작전회의를 개최하고 불안감에 흔들리는 군관들을 격려하면서 자신의 결심을 확실히 밝히곤 하였다.

“나는 적을 만나면 적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선봉에 설 것이니 제장들은 나를 따르라.”

이순신 제독이 스스로 선봉이 되어 비장한 각오로 돌격해 들어가니 이억기 함대도 그의 뒤를 따랐고 이렇게 되자 원균도 할 수 없이 그의 함대 7척을 이끌고 엉거주춤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 부산진 깊숙이 정박하고 있던 470여척의 일본함대 중에는 이미 이순신 함대에게 괴멸당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난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등도 섞여 있었고 이들을 통하여 공포의 이순신 신화가 왜군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470여척의 왜선들을 에워싸고 있는 왜성과 고지 위의 포대 진지였다. 이들은 조선의 육군으로부터 탈취한 것으로 보이는 국산 대포로 무장한 채 왜선들을 엄호하며 조선 함대가 그들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후 4시경, 그 동안 조심스럽게 접근해 가던 이순신 함대는 이제 육상포의 사정권 내로 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육상 포대의 대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포수들은 바로 왜병들에게 포로가 된 조선인들이었다. 아직 조선식 대포를 다룰 줄 몰랐던 왜병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길만이 이순신 함대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어지러이 포탄이 떨어지기만 했지 좀처럼 우리 함대에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아마도 조선인 포수들이 고의로 조준을 피했을 가능성이 다분히 있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왜병들이 조선인 포수들을 잔혹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어 육상에서 모과(木瓜)만한 수마석괴(水磨石塊:돌을 둥글게 만든 포탄)들이 무수히 날아와 우리 함선에 명중되어 희생자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 부산포 대해전

결국 조선의 대포에 의해 조선인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 어찌 이런 일이... 이순신은 너무나 통분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물러서지 말고 돌진하라! 지상포를 두려워 말라! 눈앞의 적선을 격멸하는데 만 정신을 집중하라! 우리가 적선에 바짝 접근하면 적들도 포를 쏠 수 없게 된다!”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 속으로 뛰어든 이순신 제독과 그의 24척 특공 함대는 결사적으로 포를 발사하며 적선들을 파괴하여 갔다. 육상에 있는 7만 명의 왜병들은 그들의 조총 사정권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전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이억기 함대도 이순신 함대의 뒤를 물고 이 결사전에 뛰어들어 미친 듯이 적선을 향해 포를 발사하였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결사전은 약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오후 7시경, 드디어 부산 앞바다는 온통 불타는 왜선으로 뒤덮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모든 기동 함대의 대포들은 포열(砲熱)로 인하여 더 이상 포격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더 이상 장전할 포탄도 거의 다 떨어졌다. 그야말로 유감없는 일전이었다.

제독 이순신이 정신을 가다듬고 지금까지의 전황을 살펴보니 적들은 이순신의 연합함대가 반드시 그들의 본영인 부산포로 올 것을 미리 예견한 듯 큰 전함들을 전진 배치시켜 조선함대의 공격에 막도록 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이순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여 이들 대형전투함들을 먼저 집중 공격하여 격침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이제 남은 전선들은 모두 중소형 협선들로서 이들은 모두 부둣가 깊숙이 지상포의 사정권 안에 매어있으므로 더 이상의 위험부담을 피하기로 하고 이쯤에서 싸움을 접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연합함대의 기함인 이순신 제독의 중군선으로부터 주목을 요하는 나팔이 울렸고, 곧 이어 공격 중지와 퇴각을 명하는 깃발이 올랐다. 그러자 지금까지 미친듯이 쏘아대던 연합함대의 포성이 일시에 멈추었다.

그리고 돌연 이순신의 연합함대에서는 승리를 자축하는 꽹과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부산포 하늘을 진동시켰으며, 함대는 마치 한판 잘 놀다간다는 듯 질서 정연하게 부산포를 서서히 빠져 나왔다.
왜군들은 아비규환으로 변해버린 부산포와 빠져나가는 이순신의 함대를 넋이 빠진 채 망연자실하게 쳐다만 볼 뿐이었다.

불과 3시간에 걸친 이 해전으로 일본해군은 대형 전투함 100여척과 적어도 3800명의 수군을 잃었다. 한편, 이순신의 함대에도 녹도만호 정운을 비롯하여 총 6명의 전사자를 내었고 부상자도 25명이나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에도 단 한 척의 전선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왜군들이 육상 포대를 더욱 보강할 경우 부산진 돌입 작전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이로써 이순신 제독의 연합함대는 임진년 5월 4일, 제1차 기동함대를 이끌고 출전한 이래 총 4차에 걸쳐 17회의 크고 작은 해전을 전개하며 남해의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동안 격침시키거나 나포한 적함이 무려 207척에 달했고 수리 불가능하게 대파시킨 적선 수는 152척에 이르며, 무려 33780명이나 되는 왜병을 격살하였다. 이에 비하여 이순신 함대는 단 한 척의 전선 손실도 없었고, 인명 손실 역시 전상자와 전사자를 합하여 모두 243명에 그쳤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해전이 벌어졌지만 이와 같이 일방적인 해전은 일찍이 없었다.
격침 359 대 0, 사상자 33780명 대 243명, 아마도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조선 해군의 대제독 이순신이 남긴 이 불멸의 기록은 세계 해전사의 신화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 부산포 해전의 승리

▲ 연합함대의 개선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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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환 218.154.62.156 2007-10-02

    역시 대제독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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