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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9장 조선해군 삼군 통제사 이순신 제독
조선해군 삼군 통제사(朝鮮海軍 三軍 統制使) 3

마침내 이순신은 정부의 특명으로 조선 3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3도(三道)란 경상좌, 우수군(慶尙左右水軍), 전라 좌, 우 수군(全羅左右水軍), 충청도 수군(忠淸道 水軍)을 총망라하니 곧 조선해군 총사령관을 말한다.

대제독 이순신은 본영을 한산도에 설치하고 곧 군함 배조(倍造) 계획에 착수하였다. 전투함 250척을 보유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만약 그의 계획이 성공하면, 부산과 대마도 간의 해상로 완전 봉쇄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당시의 이연 정부는 이순신의 수군 재건사업을 도와주기는커녕 군량미로 지어 놓은 농산물마저 공출해 갈 정도로, 벼슬만 올려놓고 엄청난 책임과 의무만 요구하고 있었다.

한편 일본측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도 무서운 이순신이 이제 조선 3도 수군통제사가 되었으니, 더 이상 조선 정복은 꿈도 꿀 수가 없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부산으로 몰려든 왜군들은 서서히 본국으로 철수해 갔고, 그 자리에는 정치꾼들이 들어서서 강화를 하겠다며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세월만 낚고 있었다. 그런데 이따위 유치한 정치꾼들의 작태마저도 이순신 제독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우선 수적으로 절대 열세에 있는 조선 해군을 다시 증강시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전쟁 발발 4년째로 접어든 1597년 1월 초, 왜국의 대추장 히데요시는 더 이상 정치꾼들의 말장난에 휘말리기를 거부하고, 지난번에 실패한 조선 정벌을 기어코 성공시키기 위하여 다시 제2차 조, 일 전쟁을 일으켰다.

이번에도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으로 하여 14만 7500명이 투입되었다. 지난 1차 때에는 조선의 군함이 거함이어서 해전에서 이길 수 없었다는 왜장들의 변명을 받아들여 이번에는 모든 함대를 조선 군함보다 훨씬 크고 튼튼하게 만들어 우선 해군부터 공략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철병했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재차 침입해 오자, 이순신 제독은 즉각 일본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1월 27일, 돌연 도원수(都元帥:조선군 총사령관) 권율로부터 왕명이 전달되어 왔으니, “1월 15일에 적장 가토 기요마사가 바다로 쳐들어온다는 믿을만한 정보가 있으니, 이 통제사는 즉각 수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적장을 바다에서 잡으라.”는 것이었다.

미련한 왕 이연이 믿을만한 정보라고 한 것은 적장 유키나가가 그의 부장 요시라(要時羅)를 통해 전해 온 것인데, 적이 흘린 반간계(反間計)의 진위 여부에 대한 분석도 없이 조선 국방의 유일한 연합함대를 내몰아 국가존망의 위기를 자초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모험을 감행하라는 어리석은 왕명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놀란 제독은 군사령관인 권율에게 왕명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지금의 전쟁은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천년 전의 싸움이 아니오이다. 그 때야 장수 하나 죽여서 승부를 결정지었으나, 지금은 한 국가의 모든 국력이 총동원되는 총력전인 까닭에 전쟁의 승패에 따라 그 국가와 백성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맙니다.
비록 적장 가토 기요마사가 우리의 왕자들을 인질로 잡고 있어 상감의 심기를 어지럽힌 죄가 크나, 그렇다고 한 나라의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장수된 자로서 적이 흘린 정보에 따라 나라의 운명을 짊어진 수군 연합함대를 움직여 도박을 할 수는 없나이다.
우리의 함대는 적을 격멸할 방도가 세워졌을 때에만 출동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나라가 나에게 내린 책무일 것입니다. 그까짓 적장 하나 죽여 봤자 그의 후임이 곧바로 임명되어 올 것인데, 그것보다는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대공세를 격파할 계획을 시급히 수립하고 그 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순리인 줄 압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순신 제독의 선진적인 작전 구상이나 전쟁관을 당시의 우둔한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조선군 최고사령관의 지위에 있는 권율 장군이라면 적어도 적장이 흘린 정보에 따라 아군이 경솔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병법의 기초 상식쯤은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제독의 진정어린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제독이 휘하에 거느린 무적 연합함대의 강력한 힘만 믿고 감히 왕명에 도전한다는 왜곡된 감정만 조정에 전달되게 되었다.

그러자, 그동안 이순신의 연전연승에 환호하며 그를 구국(救國)의 신장(神將)으로 우러러 따르는 백성들의 소박한 인심을, 왕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모략을 일삼던 왕 이연의 못난 간신배들은 이 일을 기회로 이순신을 제거하여 그동안 실추된 왕의 위엄을 되찾아야 한다고 왕을 충동질 한다.
사실상 이들 간신배들을 뒤에서 사주하고 있던 인물은 교활한 왕 이연 그 자신이었다. 이자는 그가 조선의 왕이라는 개념보다는 조선이 그들 이씨왕가의 소유물이라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왕은 자신이 소유한 백성들의 민심을 빼앗아 가려는 자가 있다면 이는 곧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경쟁상대로 지목하게 되고, 이러한 왕의 마음을 근접하여 잘 읽고 있는 간신배들은 그의 교활한 마음을 대변하여 주는 것으로 높은 관직을 계속 보장받게 되는 상호 보완관계(補完關係)였던 것이다.

이순신이라고 이처럼 더러운 음모가 뒤끓는 조정의 분위기를 몰랐을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안위만을 위하여 국가와 백성들의 운명을 걸고 도박을 할수는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경쟁자를 제거할 기회를 잡은 이연은 1월 27일, 자신의 명을 어겼으므로 ‘왕을 업신여긴 죄’ 그리고 출동을 거부했으므로 ‘적을 놓아 주어 이적 행위를 한 죄’를 덮어씌워 이순신을 전격 해임하고 서울로 압송하였다.

이 사건이 한 영웅의 삶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지는 몰라도, 당시의 왕 이연과 조정의 중신들이 그들 스스로가 알면서도 정치적 탐욕에 눈이 멀어 민족과 백성에 대한 반역과 매국의 죄를 저지르거나, 무지하고 무능해서 이같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한심스러워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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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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