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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1장 명량대첩
명량대첩(鳴梁大捷) 2

8월 3일 이른 아침, 서울로부터 급파된 선전관 양호(梁護)는 정성의 한 민가에서 이순신을 찾아내어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한다는 국왕의 교서(起復授三道水軍統制使敎書)를 전달하였다. 이로써 이순신은 다시 조선해군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뻔뻔스러운 왕 이연이 이순신 제독에게 준 새로운 임무는 12척의 함선으로, 수백 척 대형 전함의 왜적을 막으라는 것이었다.
단 일각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순신은 우선 수행 군관단을 편성했는데 송대립, 유황, 임영립, 방응원, 현응진, 이원용, 이희남, 홍우공 그리고 옛 수군 조방장 배흥립 등이 그들이다. 이 때부터 이순신과 군관단의 움직임은 대단히 기민하게 전개된다.

8월 5일, 이순신 일행은 벌써 곡성읍에 도착하여 고산(高山) 현감 최진강(崔鎭剛)으로부터 신병들을 인수받는데 성공하였다.

8월 6일, 옥과(玉果)에 접어드니 구례가 왜병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소문에 피난민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이순신은 여기서 옛 부하 이기남(李奇男:거북선 돌격 대장), 정사준(鄭思竣) 형제, 군관 조응복(曺應福), 양동립(梁東立) 등을 일행에 가담시켰다. 이순신에게는 그의 함대를 지휘해 줄 경험있는 군관들이 많이 필요했다.

8월 7일, 아침 일찍 옥과를 출발하여 순천(順天)으로 향하던 중, 부대가 해산되어 할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던 전라병사 이복남의 부하들을 만나 이들을 모두 수군으로 편입시켰고, 또 이들이 지참하고 있던 많은 군마와 병기들도 확보할 수 있었다.

8월 8일, 황양 현감 구덕령(具德齡), 나주 판관 원종의(元宗義), 옥구 군수 김희온(金希溫) 등을 얻고 해질 무렵 순천에 도착하니 모두가 피난 가 버리고 성안은 텅 비어 있었다.
무능한 순천 관리들은 도망가기에 바빠서 적군에게 큰 도움이 될 군기 창고를 이동도 파괴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들의 무책임한 실책은 다행스럽게도 빈손으로 해군을 재건해야 했던 이순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순신은 이 창고 안에서 놀랍게도 다량의 무기들과 장편전(長片箭) 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8월 9일, 순천을 떠나 낙안(樂安)으로 가니, 그 곳에 먼저 와 있던 순천 부사 우치적(禹致績)과 김제 군수 고봉상(高鳳翔) 등이 가담하여 왔다. 그들은 곧 국창(國倉)이 있는 보성 조양창(寶城兆陽倉)으로 향하였다. 초저녁에 도착하여 보니 그 곳에도 지키는 사람 하나 없이 창고가 봉인된 채 있었다. 이리하여 이순신은 또다시 조선 군관들의 이해 못할 행동의 결과로 많은 보급품을 확보할 수 있었다.

8월 10일, 지난 몇 일간 밤낮없이 신병모집과 보급품의 확보를 위한 노력을 강행한 결과 마침내 이순신은 극심한 피로 누적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에 놀란 수행군관 배흥립이 장군을 모시고 김안도(金安道)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유숙하며 간호하였다. 이때 배흥립은 이순신의 몸이 참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온몸이 망가진 상태임을 발견한다.

야비한 왕 이연이 마지못해 이순신을 살려 출옥시킨 이후에도, 그에게 죽일 생각으로 가했던 혹심한 고문으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몸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고, 오히려 백의종군을 강행시켜 고통을 지속시킨 결과였다. 이순신은 이런 상황 아래서도 왜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명감 하나만으로 수군통제사라는 중책을 떠안은 것이다.

8월 11일, 이순신은 아직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군관 배흥립은 장군을 모시고 숙박시설이 좀더 양호한 양산원(梁山沅)으로 옮기고 사방으로 의원을 찾아보았으나 마을은 텅 비어 있었고, 왜병들이 가까이 접근해 오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만 얻는다.

8월 12일, 이순신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경상 우수사 배설2)에게 소속전선을 모두 8월 17일까지 군영구미(軍營仇未)로 옮기라고 명하고, 거제현령 안위(安衛)와 발포만호 소계남(蘇季男)에게 따로 작전지시를 내렸다.

이 때 이순신은 구례, 곡성, 옥과, 순천, 낙안, 보성 등 무려 330km를 돌면서, 신병 1천여 명과 군량미 1개월분 그리고 뜻밖에도 많은 전투용 병기들을 거두어 들였다. 이로써 빈손으로 시작한 이순신의 조선해군은 이제 한차례의 해전은 감행할 수 있을 만한 최소한의 군량미와 병사들 그리고 병기를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 두어야 할 점은, 이순신이 고문을 받으며 망가진 몸으로 참지 못할 통증을 정신력만으로 홀로 이겨내면서도, 치밀하게 수군의 재건을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이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도 바로 등 뒤에서는 왜적의 선봉군 도진의홍 부대가 빠른 속도로 전라도 침공 작전을 벌이고 있는 급박하고 위급한 상황이었으며, 이순신은 척후병들을 사방으로 파견하여 시시각각으로 적정을 살펴가며, 왜군과는 불과 하루정도의 시간을 앞질러가며 이 많은 병참품들을 왜군보다 먼저 거두어들인 것이었다.

만약 이순신이 아니었더라면 이 모든 것들은 당연히 왜병들 손에 넘어가 버렸을 것이고 결국 이러한 책무태만이 적을 돕는 이적행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단적으로 이런 점만 보더라도 성리학(性理學)만 내세우던 무능한 이씨의 나라 조선이, 얼마나 타락했었으며 상식적인 수준의 병법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지했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같은 무지가 아이러니컬 하게도 이순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임에는 특림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제는 12척의 전함들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노꾼들과 갑판위에서 적병과 마주할 전투 병력 그리고 화포 등 전투 장비를 확보하게 되어 적의 공격에 앉아서 일방적으로 당하지만은 않게 된 것이다.

한편, 이순신 함대는 안위, 김억추가 판옥선 1척을 타고 합류하여 옴으로 해서 보유한 판옥선이 모두 13척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순신 제독의 천재적인 능력은 여기서부터 다시 한번 그 빛을 발하게 되는데, 먼저 각 포구의 어선들을 공출하여 노를 2~3개씩 더 설치하여 속도를 높이도록 개조하고, 이것들을 모두 정찰, 통신, 보급수송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전투함의 보조선으로 투입시켰다.

한편, 왜적의 대함대가 시시각각으로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전선을 새로 건조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므로, 현재 확보하고 있는 13척 전함(판옥선)만이라도 비상시에 즉시 전투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정비를 서두르는 일에 모든 노력을 집중시켰다.

이 과정에서 판옥선의 전투력을 증강시키기 위하여 거북선의 장점을 절충한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이 방법은 갑판위에 설치된 방패들을 뜯어내고 영구 고정식으로 방어벽을 높여 병사들이 적의 조총탄에 직접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한 것이었는데, 이로서 병사들에게 몸을 안전하게 숨길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크게 유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전투시 갑판위에서 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게 된 왜인들은 이 배도 거북선이라 불렀다.

8월 20일, 드디어 이순신은 갑판 개조를 끝낸 13척의 군함으로 기동함대를 구성하고, 이를 직접 지휘하여 이진(二陣)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8월 26일,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일본 해군의 척후선 8척이 이진의 60리 거리까지 접근하여 왔다. 결국 왜국의 정찰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었던 조선에 아직도 13척의 유령함대가 살아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일단, 왜적의 척후선들에게 노출된 이상 머지않아 그들의 대선단이 공격하여 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왜적들과 맞서 싸울 때가 아니었다. 왜선의 추격을 발견한 이순신은 슬그머니 함대를 어란진(於蘭津)으로 옮겨갔다.

한편, 조선 수군의 패전선 무리가 아직도 이진에 살아있다는 정보에 따라 일본의 전투선단이 급히 추격해 와 보니, 조선의 패잔함대(敗殘艦隊)는 미리 겁을 먹고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없었다. 3도 연합함대를 격파한 일본의 용맹한 군함들을 보고 도망치는 꼴이 가엾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일본군들은 도망쳤다고 생각한 그 패잔함대 13척을 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이순신 제독이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2) 배설
이순신이 12척의 함선을 수리하며 다시 전투에 나설 의지를 보이자 겁을 먹은 배설은 또다시 도망쳐 그의 고향땅에 숨어 있다가 1599년에 도원수 권율에게 잡혀 서울로 끌려간 후 처형되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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