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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1장 명량대첩
명량대첩(鳴梁大捷) 5

운명의 날, 9월 16일이 밝았다. 과연 이순신 제독이 예상한 대로 일본군 연합함대는 어란진을 발진하여 조선수군이 정박해 있는 벽파진을 향해 총출격하였다. 그러나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이순신의 유령 함대가 또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도대체 어찌 된 셈일까? 분명 일본군이 대함대가 출동하자 미리 겁을 먹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하면 어디로 갔을까? 남쪽은 일본군의 수로이므로 탈출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전라우수영이 있는 북쪽으로 달아났음이 분명하였다. 이때 대부분의 왜장들은 그동안 이순신의 복귀로 지나치게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 아무리 이순신이 신장이라 하여도 200여척이 넘는 막강한 일본의 연합 함대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 결국 이순신이 13척의 유령함대로 할 수 있는 일이란 숨어서 도망다니며 때때로 유격전술이나 펴는 것이 고작일 것 아닌가?

이순신과 13척의 실체를 파악한 왜장들에게 더 이상의 이순신 공포증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순신의 유령함대를 그대로 놓아둔다면 일본 선박들의 자유로운 항해에 불안한 요소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 기회에 기어코 이순신 함대를 격멸시켜야만 했다.

이번에 출동한 일본의 연합함대는 글자 그대로 일본수군의 최정예 함대로서, 구루지마 미치후사(來島通總)를 최선봉으로 하여,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그리고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등 일본의 기라성 같은 장수들이 총출동하고 있었다. 이순신에 대한 일본군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어제까지 이 곳 벽파진에 있었으므로 유령 함대가 도망간 것은 분명 어젯밤 늦은 시각이거나 오늘 새벽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부지런히 추격한다면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구루지마 미치후사는 1592년 6월 5일 벌어진 당항포 해전에서 전사한 형님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선봉을 자원하고 나섰던 터라 적장 이순신을 눈앞에 두고 놓칠 수는 없었다.

구루지마 미치후사(來島通總)는 무려 133척의 정예 함대를 이끌고 명량해협으로 먼저 접근하였고, 70여 척의 제2함대가 그의 뒤를 따랐다. 일본 함대가 명량해협의 남쪽 입구에 모두 집결한 것은 한낮인 12시경이었다.

대체로 본 명량해협 지적도

* 명량 해전 당시의 왜군 함선의 수는 지봉유설에 100여척, 이충무공전서 333척, 징비록 200여척, 이통제유사 500~600척, 해동명장전 수백척 등으로 기록에 따라 그 수를 다르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왜군이 총력전으로 나올 수 밖에 없던 정황 등으로 미루어 300여척 이상이 동원되고, 울돌목에 진입하여 실제 전투에 임한 배가 120~133척이고 외곽에서 대기하다 그대로 도망친 전함이 200여척이라 보는 견해가 강하다.

마침 바다의 물결이 잔잔하여 하늘도 일본 함대의 항해를 돕는 듯 하였다. 그런데 미치후사 선봉 함대가 명량해협 중 가장 폭이 좁은 울돌목에 접근하니, 일본의 연합함대 출동에 겁을 먹고 멀리 도망갔다고 생각한 유령함대가 협수로의 맞은편에 기함을 선두로 하여 미리 포진해 있었다.

미치후사가 눈여겨 살펴보니 유령 함대의 기함에 오른 장기(將旗)는 분명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으로 되어 있었다. 비로소 그 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이순신이 실제로 유령 함대를 지휘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미치후사가 이순신 함대가 친 진(陣)의 형세를 보니 적의 기함이 선봉에 서서 일본함대를 가로 막고 있었고, 그 뒤로 12척의 전함들이 포진하여 제2진을 형성하고 기함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형세였다. 그 뒤 멀리에도 또 한 무리의 선박들이 제3진을 이루고 있었는데 배의 모양으로 보아 큰 전선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문제는 맨 앞의 기함이었다. 일단 이순신만 잡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의 기함은 거선이었고 적어도 20문 정도의 대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게다가 바다의 폭이 매우 좁아 공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눈앞에는 전 일본군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이순신 함대가 버티고 서 있다. 당대 최고의 영웅 이순신과 한번 겨루어 보는 것도 사나이로서 영광된 일이 아니겠는가?… 성질 급한 미치후사는 야릇한 흥분을 느끼며 총공격의 신호를 올렸고, 대장의 명을 받은 그의 최신예 전함 133척은 서로가 앞 다투며 명량해협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순신의 13척 함대를 군함 133척으로 이기지 못한다면 차라리 배를 갈라 죽느니만 못하리라…”

미치후사는 때마침 북쪽으로 흐르는 빠른 물길을 타고 이순신을 바라보며 총공격을 명하고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돌연 미치후사 함대의 최선봉에 섰던 돌격선들이 갑자기 암초라도 걸린 듯 멈춰 서버렸다.

이순신이 미리부터 굵은 철쇄를 서로 엮어 좁은 울돌목을 가로질러 설치해 놓았던 것인데 이것이 달려들던 선봉 돌격선들의 배 밑을 걸어 기동불능 상태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뒤따르던 왜선이 이를 피하려고 방향을 돌리려 하였으나 울돌목의 빠른 물결에 휩쓸리며 그대로 앞선 배와 충돌하고 말았다.

이 당시 전 세계적인 해전 방식은 적선에 접근하여 기어오른 다음 선상에서 작전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 식이었고, 일본해군 역시 이런 방법으로 원균 함대를 전멸시킨 적이 있었다.
따라서 일본 돌격선들은 중앙에 선 배들이 암초에 걸렸을 것으로 보고, 이들을 피하여 조선의 기함을 포위할 목적으로 양쪽으로 날개를 펴듯 우회하여 들어오려고 하였다.
그런데 바깥쪽으로 돌던 왜선들 역시 물속의 암초에 걸리면서 기동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 때서야 얕은 물 속에 머리를 감추고 있는 무수히 많은 암초를 발견하고는 기함을 포위하려던 작전을 바꾸어 다시 중앙으로 재집결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순신 제독은 왜선들의 이런 모습엔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좁은 물길을 가로막고 서서, 물의 방향이 바뀌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기함을 서서히 옆으로 돌리면서, 종대로 덤벼드는 일본 함대를 향해 지자포와 현자총통 등 함재포들을 일제히 발사하기 시작하였고, 갑판 위의 병사들도 일제히 불화살과 총을 쏘아 댔다. 그러자 선봉에서 달려들던 일본 전함이 단번에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이순신 함대는 먼저 현자총통과 지자총통 등을 발사하여 일본군함의 기동력을 마비시킨 후, 곧이어 조란환(鳥卵丸)이라 불리는 새알 크기만한 쇳덩어리를 한 번에 100~200개씩 산탄으로 발사하였다.

이순신의 기함 한쪽에서 한 번에 발사되는 조란환은 모두 약 2천 개나 되어 갑판 위에 노출된 왜병들은 순식간에 몰살당하고 말았다. 이런 전법을 이순신 제독은 합력사살(合力射殺)이라 하였다.

앞장선 전함이 순식간에 지옥불에 휩싸여 처참한 지경이 되자, 후열의 전함들은 조선군함의 가공할 함포사격에 소름이 끼쳤다.
그럼에도 그들은 뒤를 따르는 동료 함선들 때문에 뒤로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물살이 그들을 조선 함대 쪽으로 밀어주고 있어서 후퇴하기가 물리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진해도 죽고 물러서도 죽게 되었으니, 차라리 일본 병사답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으리라… 이런 결심으로 선발 돌격선들은 그들의 목숨을 신불(神佛)에게 맡기고 결사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통제사 이순신 제독의 기함은 아직도 홀로 적을 맞아 약 1시간 가까이 결사전을 전개하며 고군분투(孤軍奮鬪) 하고 있었다.

이때의 해전 역시 일본수군이 육박전을 겨냥하여 조총을 주로 사용한데 비하여, 이순신 함대는 대포를 주무기로 한 현대적인 함포전으로 일관하여 전투방식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순신의 천재성은 자신이 이끌어야 할 병사들의 특성을 잘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농경을 천하의 대본(天下之大本)으로 알고 있는 조선인들이 천성이 유약하고 어질어서 눈앞의 적을 두고도 차마 죽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버릇이 있음을 관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생(殺生)할 목표물을 멀리 두고 활이나 포를 쏘도록 하면 서슴없이 사격하며 탁월한 능력을 보이곤 하였는데 이것은 생활습관과 관습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이 작은 차이가 전장에서는 삶과 죽음을 가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순신은 자신의 부하들을 적 앞에 노출시키지 않고 배안에서 그들이 가장 잘하는 활쏘기나 대포사격으로 적선을 파괴하는 새로운 전투방식으로 채택하니 그것이 이순신의 백전백승 신화의 비밀이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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