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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0장 원균의 조선함대 참패
원균과 조선해군의 최후(元均과 朝鮮海軍의 最後) 2

한편 적의 철통같은 감시망 속에서 원균의 조선함대가 절영도 앞바다에 도착한 것은 이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저녁 7시경이었다.

이 때의 상황을 유성용의 말을 빌려 보면…
“원균이 절영도에 이르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일었으며, 날은 이미 저물었는데 정박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돌연 왜적의 대, 소선 수백 척이 미리 숨어 있다가 출현하자 원균은 곧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하루종일 휴식도 없이 노를 저어 피곤에 지쳐 있어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왜선은 우리가 피곤해지도록 유인했으며, 우리 함대는 통제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밤이 깊어지자 바람이 더욱 거세어졌고, 우리 배는 표류하여 서로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때 절영도에는 안골포, 김해, 웅포, 가덕등지로부터 500여척의 배가 몰려들어 있었고, 또 부산지구로부터 원균 함대를 부산에 도착하기 전에 도중에서 차단하라는 특명을 받은 500여척의 전투 함대들이 미리 도착하여 원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적의 움직임을 짐작도 못하고 있던 원균은 자신을 적 앞에 노출시키며 죽음의 항진을 계속 강행시키다가 드디어 절영도 앞바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적함대를 발견하고 기겁하여 뱃머리를 돌리려 하였던 것이다.

대장선이 뱃머리를 돌리자 뒤따르던 함선들이 일시에 무너지며 모두 대열을 이탈하여 제각기 그 곳을 빠져나와 본영이 있는 한산도를 향하여 막연하게 달아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단 한 척의 왜선도 조선 함대를 추격해 오지 않았다. 이미 한산도에서 이순신 함대의 유인 작전에 걸려 전멸당한 경험이 있는 왜장들은 지금까지 조선함대가 결전을 피하고 도망치는 경우를 본 일이 없었으므로, 신임 제독 원균이 허둥지둥 도망치는 것이 또 하나의 유인작전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지극히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항해에 무지했던 한심한 원균은 날씨 변화와 사람의 한계를 무시한 멍청한 항해를 강행함으로써, 왜적들과는 싸워 보지도 못하고 혼자 지쳐서 무려 20여 척의 함선과 수천의 병력을 잃고 말았다.
왜선의 추격을 예상하고 공포의 탈출극을 연출한 원균 함대가 겨우 가덕도에 도착하자, 극도로 목이 말랐던 병사들은 저마다 앞을 다투어 상륙하여 정신없이 물을 찾았다.

그러나 가덕도에는 왜장 도진의홍(島津義弘)이 이끄는 살마군(薩摩軍)이 미리부터 상륙하여 주둔하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조선수군의 대함대를 발견하고 살마군 토벌작전이 전개 된 것으로 생각하고 긴장하여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조선함대의 수병들이 비무장 상태로 상륙하여 우물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보고 일시에 달려 나와 무자비하게 도륙해 버렸다.
상륙하기 전에 정찰병 하나 파견할 줄 몰랐던 원균의 무지로 인해 무려 400여 명의 부하들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7월 9일 새벽 4시경, 원균이 이끄는 연합함대는 간신히 칠천량의 외즐포에 도착하였다.
국왕의 단호한 출전명령을 받고 부산의 일본함대를 격멸하겠다며 떠났던 원균 함대는 왜적과는 교전 한 번 못해본 채 20척의 함선과 수천 명의 부하들만 잃고 말았다. 마치 패잔병처럼 전의를 상실한 원균은 한산도 본영으로 빨리 돌아가 이 악몽을 모두 잊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균의 승첩 보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도원수 권율은 원균이 부산 문턱에서 되돌아왔다는 보고를 접하고 격노하여 그를 급히 불러들여 묶어 놓고 그의 죄를 엄히 물었다.

이순신이 왕명을 어겼다고 모함했던 원균이 이번에는 그 자신이 같은 함정에서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때 원균은 도원수 권율로부터 곤장을 맞고 다시 부산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로써 한산도 본영으로 되돌아가려던 원균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그렇다고 다시 부산으로 쳐들어갈 용기도 없어 매일 술만 퍼마시면서 자포자기에 빠져 버렸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 제독에게 연전연패한 이유를 조선의 전선에 설치된 함재포로 인한 조총과 대포의 화력차이로 파악하고, 일본전함에도 함재포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함재포를 장착한 왜선의 모습을 일본인이 그린 것이다.

한편, 원균 함대의 부산 공격으로 일시 당황했던 왜장들은 공격이 있던 날 원균이 보여준 수상한 행동이 원균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을 짓고 이번에야말로 조선 수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전의를 불태우게 되었다.

이리하여 부산을 결사 수호하려던 왜장들은 이번에는 원균 함대를 완전히 전멸시킨다는 전략을 확정하고 이를 위하여 1천여 척의 대연합함대를 편성하여 조선 함대가 정박해 있는 외즐포로부터 불과 60리 거리에 있는 웅포와 안골포 등지로 총집결시켰다.

7월 15일 밤 10시, 왜군은 척후의 임무를 띤 6척의 쾌속선대를 파견하여 원균 함대의 동향을 파악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원균은 연합함대가 정박한 외즐포에 경비선 하나 세우지 않고 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척후선으로부터 원균함대의 동향을 보고 받은 왜장들은 혹시 원균이 이토록 상식 이하의 허점을 고의적으로 노출시켜 왜군의 습격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의견이 또다시 속출했다.
이처럼 원균의 이상한 함대배치를 의심하던 왜장들은 전격적인 총공세에 앞서 또다시 6척의 특공 전투선단을 파견하여 잠자는 원균 함대를 공격하며 그 반응을 시험해 보기로 한다.

이리하여 파견된 6척의 특공전투선단은 조용하게 외즐포의 외항을 거쳐 원균 함대가 정박하고 있는 내항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도 원균 함대의 수병들은 누구하나 왜적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한 듯 모두가 지쳐서 깊은 숙면에 들고 있었다. 왜군의 특공선단이 아무리 주위를 살펴보아도 원균 함대의 이상 징후(徵候)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장들이 지금까지 원균의 역량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이제 더 이상 원균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일단 원균 함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자 6척의 특공함대는 그들의 이름 그대로 조선함대에 대한 기습 특공작전에 돌입했다.

느닷없는 왜선들의 함성과 불화살 그리고 요란한 조총공격에 잠이 깨며 혼비백산한 원균 함대는 불시에 대혼란에 빠지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로서 일본의 특공선단은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달성하고 재빨리 외즐포를 빠져 나왔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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