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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8장 이순신함대
이순신 함대 제1차 출동(李舜臣 艦隊 弟一次 出動) 2

5월 6일 오전 8시, 숨어 있던 원균이 전선 한 척을 타고 초라하게 당포에 나타났고, 그 동안 흩어져 있던 원균 함대의 잔류 군함 4척도 이순신의 기동 함대에 합류하였다.

이로서 비록 4척에 불과한 경상우수군 함대였지만, 형식상으로는 전라좌수군 과 경상우수군이 연합 함대를 구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연합 함대는 전투 군함이 28척, 협선은 27척으로 늘어났다.

아래는 난중일기에 기록된 이순신 제독의 연합 기동함대 항해일지이다.
① 5월 4일 새벽, 이순신 함대 출항
② 남해 현령 기효근(奇孝謹), 미조 첨사 김승룡(金勝龍), 평산포 권관 김축(金軸) 등이 숨어 있다가 이순신의 호출을 받고 판옥선 한 척을 타고 옴.
③ 소비포 권관 이영남(李英男), 사량 만호 이여념(李汝恬)이 각각 협선을 타고 이순신 함대에 합류
④ 영등포 만호 우치적(禹致績), 옥포 만호 이운룡(李雲龍)이 각각 전선을 타고 이순신 함대에 합류.
⑤ 5월 7일 정오, 옥로 앞바다에 다다른 척후선 우척후 선장 김완, 좌척후 선장 김인영이 옥포만 안에 정박중인 왜 선단을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순신 기동 연합함대를 보면...
좌부장 : 신호(申浩), 우부장-김득광(金得光)
전부장 : 배흥립(裵興立), 중부장-어영담(魚永潭)
중위장 : 이순신(李舜臣), 유군장-나대용(羅大用)
후부장 : 정운(鄭運)
돌격장(거북선) : 이언량(李彦良),
후 위 : 경상우수영군 3척

5월 5일 정오경, 당포 앞바다에 도착한 이순신은 경상우수군 함대와 연합함대를 구성하여 왜적을 요격하려 하였으나, 경상우수군의 기동함대는 보이지 않고 5월 6일 오전 8시가 되니 원균이 판옥전선 1척을 타고 나타났던 것이다.

원균은 제 함대를 모두 오아포 앞바다에 수장하고 사천으로 도망쳤다가, 이순신 기동함대의 도착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어 있던 한산도에서 기어 나온 것이다. 설마 했던 원균 함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을 발견한 이순신은 실로 경악하였다. 그러나 이미 적을 치기위해 출전한 상태였으므로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불행 중 다행으로 원균의 부하들 중 이순신 제독의 소집 군령을 받은 남해 현령 기효근과 영등포 만호 우치적, 옥포 만호 이운룡 등이 각각 원균의 눈을 피해 숨겨 두었던 군함을 타고 달려오니 경상우수영의 전선이 모두 4척으로 늘어났다.

이순신 제독은 곧 우수영 소속 전선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그 중 기동이 가능한 3척을 뽑아 연합 기동함대에 편입시켰다. 그날 밤은 송미포에서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한 후 다음날 5월 7일 새벽 4시, 송미포를 떠나 가덕도로 향하던 중 뜻밖에도 옥포에 대규모의 왜적선단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때 이순신 제독이 처음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왜선은 700척이 넘는다 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700대 28척의 불가능한 해전을 각오해야만 했다. 장군으로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분석하여 최선의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역량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필수 여건이 아닐 수 없다.

제독은 지금 확보한 정보의 정확성 여부를 다시 한번 재확인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우척후장 김완과 좌척후장 김인영을 불러 임무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빠른 정탐선을 주어 확실한 정보 수집을 명하였다.
척후선들이 떠나자 이순신 제독은 각 함장들에게 긴장상태를 풀지 말고 전투대형을 유지한 채 척후선의 동향을 주시하도록 하였다.

긴장과 흥분 그리고 초조한 기운이 연합함대를 엄습하고 있는 가운데 낮 12시경, 옥포 앞바다를 돌아선 척후선으로부터 3발의 신기전(神機箭)이 하늘 높이 발사되었다. 드디어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인 동시에 적선의 수효가 약 30여척으로 보인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번 해볼 만 했다.
왜적의 대규모 함대를 옥포에서 포촉했음이 확인되자 제독의 기함에선 즉시 각 함선에 전투 대오를 유지하고 전진을 명하는 대장 깃발이 올랐다. 그러자 돌연 병사들이 술렁대며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 해전은 조, 일 7년 전쟁 중 조선해군과 일본해군이 공식적으로 조우(遭遇)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역사는 이때의 해전을 일컬어 옥포(玉浦)해전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옥포해전은 그 규모면에서 조선의 이순신 함대측이 귀선(거북선) 1척에 전함(판옥선) 27척 등 총 28척이 참가한데 비하여, 일본의 도도 다카토라 함대는 약 3~40여척(대형전함-아타케3), 중형-세키)이라고 기록이 남기고 있어 적어도 규모 면에서는 엇비슷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옥포만 안에는 일본해군의 최정예라는 도도 다카토라(여堂高虎) 함대가 오리우치 우치요시(堀內氏善)와 연합 함대를 구성하여 정박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일면식도 없는 조선해군을 찾아 소탕하고, 남해를 돌아 서해를 거슬러 서울의 마포나루까지 통하는 해로를 확보하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최선봉함대로서 이미 부산진과 김해를 함락시키고 5월 6일 10시경, 율포(栗浦)를 유린한 후 5월 7일 아침, 이 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옥포에 도착하고 보니 예상했던 조선수군은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다카토라4)는 대장들과 더불어 기생들을 데리고 기분 좋게 승리의 자축연을 벌이고 있었다. 완전하게 전투준비를 끝마친 이순신의 기동함대는 양지암치를 돌아 옥포만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처음으로 왜적과 만난다는 흥분으로 병사들 속에 작은 동요가 일어났다.

그러자 이순신제독은 “勿令妄動 靜中如山(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침착하고 신중하기를 산과 같이 하라)”라는 엄명을 각 선단에 하달하였다고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전하고 있다.

한편, 옥포만의 높은 조선식 정자에서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던 왜군의 함대 사령관 다카토라는 느닷없는 부하들의 외침소리에 비로소 옥포만 입구를 봉쇄하고 몰려드는 조선 함대를 발견하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까지 조선의 해군들은 미리 겁을 먹고 모조리 달아나 버린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왜군 대장 다카토라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실종되었던 조선해군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감하 일본해군에게 도전해오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술이 거나한 다카토라가 유심히 살펴보니, 조선 함대의 수효가 고작 28척 뿐이라 이만하면 한번 멋지게 승부를 걸어 볼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벌써 3주 이상이나 조선 해안을 누비고 다녔으나 이렇다 할 전투 한 번 제대로 못해 본 터에 이제야 겨우 조선 해군의 도전을 받게 되자 다카토라와 우치요시는 단번에 조선해군을 격멸시켜 대합(太閤) 전하께 첫 번째 승전보를 보내 드리고, 아울러 일본 해군의 매서운 맛을 보여 줘야겠다는 각오로 기세 좋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이미 상륙하여 해안가의 민가들을 뒤지며 피난 간 백성들이 남겨 놓은 물품들을 훔치는데 정신이 없던 수병들을 즉시 소속 함선으로 불러 모으는 고동소리가 울려 퍼졌고 왜군의 함선들은 전투형태로 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출전준비를 마치고 번을 섰던 전선들은 본대가 정렬하는 여유도 주지 않고 지체없이 출동하여 서로 경쟁이나 하듯 첫 공을 탐하여 조선함대를 향하여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3) 난중일기는 적의 대장선의 모습을 4면에 포장을 둘러치고 여러 가지 문양의 깃발(幡,幢)을 세워놓았다고 했는데 이는 전형적인 일본의 대형전함 아타케의 모습이다. 아타케는 갑판(甲板)에 누각(樓閣)같은 구조물(構造物)을 세워 배의 중량을 무겁게 하여 기동력에 지장을 줄 정도였으므로 보기에 화려한 것과는 달리 전선으로서의 기능은 판옥선에 비하여 뒤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4) 도도 다카토라(여堂高虎)
오미(近江:지금의 시가현(滋賀縣)) 출생.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수군장으로 출전하였다가 패전만 거듭 하였음에도 돌아가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오즈성(大洲城)을 받고 7만 석(石)의 영지(領地)를 봉록(封祿)받는 다이묘(諸侯)가 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웅천(熊川)에서는 경상우도수군절도사(慶尙右道水軍節度使) 배설(裵楔)의 수군과, 칠천량(漆川梁)에서는 통제사(統制使) 원균(元均)을 무너트렸다.
1598년 도요토미가 죽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선봉장으로 무공을 세워 32만 951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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