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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0장 원균의 조선함대 참패
원균과 조선해군의 최후(元均과 朝鮮海軍의 最後) 3

일본의 특공함대가 돌아가자, 눈치 빠른 경상 우수사 배설은 원균 밑에 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직속 함대 12척을 이끌고 일본 특공함대를 추격하는 척하면서 외즐포를 벗어나 한산도 방면으로 도망쳐 버렸다.

불과 6척의 특공선단 출현에 조선수군의 본진이 허둥지둥하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는 소식에도 왜군 대장들은 아직도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동안 이순신 함대의 유인, 매복, 기습 작전에 걸려 매번 참패를 당했던 기억이 뇌리(腦裏) 속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원균이 병법에 어둡다고 해도 외항에 경비선 하나 세우지 않고 조선 함대의 주력을 외즐포의 좁은 항구에 집결시켜 놓고 경야(經夜)할 리가 만무하였다. 그래서 6척의 특공함대로 조선해군의 동태를 살펴보게 하였는데, 역시 몰상식한 군진을 이루고 있음만 다시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균은 정말 우장(愚將)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80만 신(神)들이 만들어 주신 절호의 기회였다. 그 동안 조선해군에 당한 모멸과 치욕을 상기하면서 왜장들은 극도로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의 일본연합 함대에는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 그리고 이순신의 해상 봉쇄로 처참한 희생을 감수하며 스스로 평양성을 탈출해야만 했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 30여 왜장들이 모두 참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전투를 위하여 육군의 최정예 부대까지 동원하여 전투 병력만 총 10만 명에, 전투함선이 무려 1천척이 넘는, 세계 해전 사상 전무후무한 최대의 연합함대를 구성하였다.

원균함대 외즐포 치욕의 해전

16일 새벽 4시경, 일본 최대의 연합함대는 외즐포로 통하는 상, 하 양쪽의 항구 입구를 겹겹이 포위한 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화력을 총동원하여 일시에 돌진해 들어갔다. 전 일본의 모든 전력을 한꺼번에 집중시킨 것이다. 그러자 무방비 상태에 지치고 사기마저 떨어진 원균 함대는 허둥지둥 당황하며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때까지도 술기운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통제사 원균은 너무도 놀라고 겁에 질려 그가 그리도 애용하던 장군복도 걸치지 못한 채 기함의 닻을 서둘러 올리고 외즐포를 탈출하기 위하여 결사적으로 좌충우돌하였다.

가장 우수한 노꾼들을 징집했던 원균의 기함은 사력을 다한 몸부림으로 겨우 겹겹이 쳐진 왜군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원균이 뒤를 돌아다보니 거의 모든 조선 군함들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원균의 기함을 따르는 배도 2, 3척에 지나지 않았다.
원균은 한산도를 바라보고 필사적으로 달아났고 그 뒤를 왜선들이 맹추격해 왔다.

원균이 간신히 한산도로 통하는 견내량 입구에 도착하고 보니, 그 곳에도 수백 척의 왜선들이 수로를 철통같이 봉쇄하고 있었다.이 때, 조선의 기함을 발견한 왜선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집중공격을 퍼부으니 기함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며 침몰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원균은 배를 버리고 물에 뛰어들어 간신히 섬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러자 이를 본 왜병들이 서로 공을 세우기 위해 다투어 추격하여 왔다. 비대한 몸집의 원균은 결국 왜병들에게 잡히게 되었고, 그들의 칼날에 참혹하게 살해되고 말았다.

이순신이 일으켜 놓은 조선해군의 무적 연합함대를 파멸시킨 장본인이 왜군들이 아니라 바로 원균 자신이었음을 알고나 죽었을까?

한편, 조선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인 원균의 기함이 전장을 이탈하여 달아나기 시작하자, 전라우수영의 이억기1) 함대와 최호 수사의 충청도 함대도 적의 포위망을 뚫고 기함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연합함대 사령관 원균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나며 함대의 지휘권을 스스로 버리자 더 이상 원균을 따를 수 없게 된 이들은 전선의 방향을 돌려 춘원포로 향했다.

그러나 그 곳에도 왜선들이 일직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던 이억기는 마침내 최후의 결전을 감행한다. 결국 패전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진 전라우수사 이억기는 목에 칼을 꽂아 영웅답게 자결하였다.

이로서 전설적인 이순신의 무적함대는 원균에 의해 완전히 전멸 당하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조선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고만장한 일본군 총사령관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는 7월 17일, 새로운 작전 회의를 소집하고, 이미 북진 중인 우군(右軍)을 제외하고 좌군(左軍)과 중군의 10만 대병을, 군선을 이용하여 서해를 돌아 곧장 한강으로 상륙시켜 서울을 단숨에 점령하라는 새로운 전략을 지시하였다.

이에따라 7월 29일, 일본의 좌군과 중군의 연합군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는 서해를 향하여 일제히 출발하였다. 이제야 왜장들은 그들이 조, 일 전쟁의 초기부터 치밀하게 계획했던 수륙 병진 전략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이순신의 무적함대는 사라졌고, 오매불망하던 병참 수송로가 활짝 열린 마당에 일본의 수군은 규슈로부터 실어오는 보급품을 바다로 운반하여 서울의 마포까지 옮겨다 놓을 것이었다. 그동안 육군은 경장비만 지닌 채 빠른 속도로 서울로 진격하여 비겁한 조선왕을 잡기만 하면 조선을 일본에 병탄하려는 히데요시의 작전은 끝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이에따라 조선침략을 총 책임지고 있던 대장 우키다 히데이에는 새로 수립된 작전을 각 부대의 장군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그 자신도 부산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였다.

새로운 명령에 따라 모든 왜장들이 움직였는데 고니시 유키나가는 웅천에서, 시마즈 요시히로는 거제도에서, 모리 요시나리(毛利吉成)와 이토 우헤이(伊東祐兵)는 안골포에서 각각 출발하였으며, 하치스가 이에마사(蜂須賀家政)와 나마고마 히토마사(生駒一正) 등도 타군들과 보조를 맞추어 가며 모두 사천 근처로 총집결하였다.

다시 사천을 출발한 왜군은 섬진강의 수로를 따라 올라가서 구례를 삼키고, 8월 16일에는 벌써 남원성을 함락시켰으며, 다시 바다로 내려와 전라우수영을 목표로 진군하였다.

이 때 일본 중군과 좌군은 대형 수송선 130여 척에 10만 병력이 분승하고 있었고, 또 70여 척의 호위 전함들을 거느리고 있어서 글자 그대로 천하무적의 대함대를 구성하고 있었다.

1) 이억기(李億棋) 전라 우수사
이억기는 육지로 도망치다 왜군들에 의하여 개처럼 도살당한 원균과는 달리 조선 연합함대 참패의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깨끗하게 자결함으로서 장군의 품위를 잃지 않았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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