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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4장 풍신수길(豊臣秀吉)
왜원장(矮猿將) 풍신수길(豊臣秀吉)1) 1

이씨 조선왕조는 한동안 태평세월을 맞이하였다. 전란마저 줄어들자, 무관들을 억제해 오던 왕조에서는 나약하고 말 많은 문관들만 들끓게 되었는데 이런 위인들이 하는 일이란 서로 왕의 신임을 얻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아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결국 저희끼리 작당하여 당파 싸움질로 세월을 허비하며 나라의 막대한 국력만 소진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1460년 당시, 일본의 상황은 한반도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소위 ‘응인의 난(應仁之亂)’이라는 영주들 간의 지배권 장악을 위한 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된 것이다. 이후 120년간 약육강식의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처절하게 계속되었다.

그리고 1536년, 일본 중부 오와리(尾張)라는 시골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마치 원숭이를 닮은 볼품없는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기노시타 도치키로(木下여吉郞)였고, 나중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라 하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는 진정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을 위하여 살다 간 전쟁 미치광이이자, 무고한 생명을 수없이 앗아간 역사상 최대의 엽기적인 살인마였다.

그는 고향인 이마카와(今川) 지방의 호족 밑에서 졸개로 출발하여 갖은 잔꾀와 아첨으로 당시의 최강자였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2)의 눈에 띄게 되었다. 주인 오다 노부나가의 개인 시종으로 출발한 히데요시는 곧이어 마구간의 감독을 거쳐 노부나가의 재산 관리인으로 임명되었다.
히데요시는 주인을 위하여 그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노부나가가 20여 주를 격파하는데 큰 공을 세워 셋쓰진(攝津鎭)의 수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뛰어난 재치와 작전으로 승진을 거듭한 히데요시는 1573년, 드디어 18만 석의 땅 나가하마(長浜)의 영주가 되었다. 이제 중신의 자격으로 큰 작전을 지휘할 수 있게 된 히데요시는 실로 눈부신 활약으로 노부나가를 최강자의 위치에 올려놓았다.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서부 지방원정 도중 부장(副將)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반란으로 피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전국 통일의 최강자 오다 노부나가의 피살 사건이 있을 당시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명으로 비주(備中)의 다카마쓰성(高松城)을 공격하고 있었다.
히데요시는 즉각 다카마쓰 성주가 자결하는 조건으로 강화를 성립시키고, 노부나가가 죽은 지 4일 후인 6월 6일, 전군을 몰아 폭풍우 속을 달려갔다.

6월 13일, 히데요시는 셋쓰(攝津)의 야마자키(山岐)에서 아케치군을 포촉하고 단 한번의 전투 끝에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때 대패한 아케치 미쓰히데는 오미(近江)의 본성(本城)으로 도망치던 도중 농민들에게 피살되었다.

이 때 히데요시는 주군(主君)의 복수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고 노부나가 휘하의 여러 상위급 장군들을 소집하였는데, 대다수의 장수들은 앞뒤를 분석해볼 경황도 없이 히데요시의 요구에 기꺼이 응하였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보니, 이들은 엉겁결에 모두 히데요시의 지휘를 받는 휘하 장수로 전락해 있었다. 이처럼 히데요시는 임기응변에 뛰어난 인물이었다.

주군의 복수전에서 개선한 지 14일째인 1582년 6월 26일, 히데요시는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자며 오다 노부나가의 중신들을 모두 기요스성으로 소집하였다.
이때 히데요시는 피살된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信忠)의 아들 산보시(三法師)를 안고 나와 마치 자신이 주인의 계승자라도 된 듯이 행동하며 현장을 위압하는 분위기로 몰아넣었다.

히데요시가 주도한 기요스성 대책회의 결과, 노부나가의 영지가 새롭게 분배되었는데, 이때 히데요시는 하리마(播磨), 야마시로(山城), 단바(丹波), 가와치(河內)를 획득함으로써 일약 대영주의 위치로 부상하게 된다.

10월 15일, 히데요시는 주군 노부나가의 추모 의식을 교토의 절에서 거행하여 새로운 종주 세력으로 떠오른 그의 위상을 마음껏 과시한 뒤, 자신에 반대하는 전(前) 노부나가 유력 부장들의 연합군을 1583년에 시즈카케(賤嶽)에서 격파하여 세력을 굳혔다. 이 싸움에서 히데요시는 자신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승부를 걸어 승리하였고, 이를 지켜본 많은 장군들은 그의 위세에 압도되었다.

1588년 9월 1일, 히데요시는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감추기 위하여 일본 최고(最高)의 성을 축조하는 작업에 착수하여 1585년, 5층으로 된 천수각(天守閣)을 완공하니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오사카성(大阪城)이 그것이다.

히데요시의 위상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오르자 그의 위세에 눌린 왕실은 이 무식한 무장에게 내대신(內大臣) 관백(關白) 벼슬을 수여한 후, 1586년에는 태정대신(太政大臣)으로 봉했을 뿐 아니라, 도요토미(豊臣)3)라는 귀족 성씨를 수여하였다.

이때 히데요시가 획득한 태정대신이란 벼슬은 천황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직책으로, 장군인 그에게는 하등 불필요한 벼슬이었다. 그런데도 그 벼슬을 원했던 것은 비천한 그의 출신을 감추고 귀족의 일원으로 행세하고 싶은 열등의식의 발로였다. 그런데 이 일자무식(一字無識)의 태정대신 히데요시는 정말로 천황궁의 정무에 참여하기라도 해볼 생각인지 집사장을 불러들여 개인교습을 자청한다.

이때 히데요시가 집사장으로부터 얻어 들은 천황가의 비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본은 신국(神國)이고, 천황은 곧 신(神)이었다. 천황은 인신(人神)의 자격으로 하늘의 팔만(八万) 조상신들과 통하는데, 일본은 신들의 도움으로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 옛날 소잔오신(素?鳴神)께서 고황산큰신[高皇産大神]의 노여움을 사,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몸에 자신의 씨(황손,皇孫)를 남겨 놓고, 먼저 바다 건너 위원중국(葦原中國)4)으로 가 일향출운국(日向出雲國)을 세웠다.
한편 뒤에 남은 고마나루[곰나루,熊津]의 황손들도 옛 가우리 신(高麗神)들의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모두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오게 됐었다. 이런 연유로 천황가는 늘 고천원(高天原)5)이 있는 고마나루로 돌아가, 아직도 그 곳에 계시는 천신(조상의 혼령)들을 모셔 와 일본 땅이 신들의 영원한 보금자리가 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이때, 일자 무식자 히데요시가 황실 집사장으로부터 얻어들은 천황가의 비밀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들뿐으로 현실적 실용주의자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백성들로부터 인신(人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천황과 천황가(天皇家)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천황의 백성을 자처하는 일본의 백성들을 다스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지금의 이 정보들을 무시할 수도 없게 되었다.

결국 이때 집사장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종합해 보면 그 옛날 몽골 오랑캐들이 가우리 천손들의 배(高麗天孫の船)를 타고 일본을 침략하려다 실패한 것도 다 신(神)들이 천손의 나라 일본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력한 태풍(新風,かみかぜ)을 두 차례나 불게 하여 침략자들을 응징하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천황가의 선조들을 천상6)에서 쫓아낸 가우리[高句麗]도 결국 신국이라는 뜻인데 일본만이 유일한 신국이라 하는 것은 모순이지 않는가? 또 가우리를 멸망시킨 실라[시라키,新羅]는 가우리보다 더 위대한 신의 나라인가?

결국, 천황가는 천손이면서도 대륙에서 나라를 잃고 일본 섬으로 쫓겨 와서는 일본을 정복하고 거기서 천황노릇을 해 온 것이 아닌가?!
그 동안 천황들은 우리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정말 신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결국 천황들도 전쟁에서 지고 쫓겨 온 망명집단 같은 존재와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비록 히데요시가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지금은 일본 천하를 통일하고 일본의 전 다이묘(大名)들을 호령하는 몸이 되었다.
그럼 주군(主君) 노부나가의 복수를 해냈듯이 1000년 묵은 천황가의 숙원도 내 손으로 풀어낸다면 히데요시는 천황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1) 명사(明史)의 일본전(日本傳)에는 풍신수길이 노예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호랑이로 불리던 오다 노부히데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정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을 거부한 파격적인 개성의 소유자였다. 노부나가는 아버지 노부히데가 죽은 후 가문의 적대세력을 모조리 숙청하고, 일본의 통일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노부나가는 1543년 포르투칼 선교사들로부터 조총(鳥銃)을 수입하고, 신부(神父) 루이스 후로이드(Luis Frois)를 종군시키며 일본 최초의 조총부대를 만들고 일본 최강의 다께다 신켄의 기마군단을 괴멸시키는 등 전국시대의 일본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히데요시

3) 히데요시의 본 이름은 기노시다 도오기치로였다. 그러나 그의 사회적 신분이 상승 될 때마다 이름을 얻었으니 기노시다 히데요시⇒ 하시바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모두 그의 이름이었다.

4) 위원중국(葦原中國)
일본말로는 아시하라노 나까쯔구니(葦原の中つ國)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갈대가 무성한 중간의 나라’이다. 그러나 이 경우 한자의 뜻풀이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이 말의 출처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고대 일본을 부르는 말로 ‘풍국서호의 아시하라(豊國端穗の葦原)’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아시(葦)는 고대 한국어 ‘새(新)’이며, 하라(原)는 ‘벌(들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시하라는 새로운 땅이라는 뜻이 되는데 中つ國(중간의 땅)라 했으니 글자 그대로 ‘중간에 있는 새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5) 고천원(高天原)
태고(太古)로부터 배달겨레의 구심점으로 정치, 종교 그리고 교육의 중심이 된 신수두의 성역(聖域)이다. 처음에는 한님[天神]과 ?님[地神]만 모셨으나, 차츰 그 의미가 변하여 옛 단군 선조(檀君先祖)도 같이 모시면서 처음으로 선신(仙神 :人神 : 조상신)이 제사를 받게 되었다.
백제 때에는 시조 비류천황과 소서노 어라하도 모시게 되어 그 의미가 변해갔으며, 그 후 사람들이 서로 자기들의 직계 조상들을 모셔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우리 민족은 이 세상에서 사람신[祖上神]을 믿는 유일한 민족이 되었다.

6) 천상(天上)은 일본의 건국신화에서 말하는 일본 건국신들이 산다는 하늘나라를 말하는데, 신화를 분석해 보면 그들이 말하는 천상이 곧 한반도의 백제임을 알 수 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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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수 211.216.77.33 2007-11-05

    가미가제 이거 한자로 神風입니다. 수정하세요 ^^

  • 이대홍 211.194.127.153 2007-07-25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축조한 시기는 1583년 입니다. ^^ 수정하세요.

  • 임명환 218.154.62.156 2007-07-23

    일명 오닌의 난....아무튼 저 소잔오와 고황산은 대쥬신제국사2권에 나오는 백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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