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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0장 원균의 조선함대 참패
원균과 조선해군의 최후(元均과 朝鮮海軍의 最後) 1

하늘같은 어명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았다 하여 자신의 왕권을 지켜 준 구국의 영웅을 죄인으로 몰아 파직시킨 어리석은 왕 이연은 후임 통제사로 원균을 임명하였다.

1597년 2월 6일, 원균은 의기양양하게 조선 해군의 대제독으로 승진하여 부임하였다.
그 때, 전임 제독으로부터 인수받은 품목은 전함 200척, 군량미 99124석, 화약 4천근, 대포 300문 등이었다. 전임 제독 이순신이 남겨 놓은 군량미를 발견한 원균은 뛸 듯이 기뻤다. 자신을 대제독으로 밀어 준 조정 대신들에게 쓸 뇌물로서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원균은 전임 제독의 참모들을 무자비하게 파면 또는 강등시키고, 자신의 측근들을 주요 요직에 앉혔다. 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고, 원균의 압제에 견디지 못한 많은 수군들이 군복을 벗어던지고 탈영하기에 이르렀다.
이씨 왕가의 조선 해군은 명제독(名提督) 이순신을 스스로 파면하고 원균을 후임으로 발령한 결과로서 이순신 제독의 250척 군함건조 계획을 무산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15만 왜적들이 우리의 강토를 무단 침입하여 죄 없는 백성들을 납치하고 강탈과 강간을 일삼으며 그 삶의 터전을 마구 유린하는 비상 전시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 모두를 망각한 듯, 원균은 매일같이 술과 계집을 작전 본부실로 끌어들였다.

그러한 원균의 작태는 그를 철저히 옹호하며 지원했던 왕 이연을 비롯하여 조정의 여러 대신들마저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천재적인 이순신의 절묘한 용병술에 힘입어 연전연승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정 대신들은 막연히 원균도 이순신처럼 강력한 조선 함대를 이끌고 허약한 일본 해군을 일방적으로 물리칠 수 있으리라는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허황된 기대를 갖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것이 바로 원균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이순신의 성공에 질투의 화신이 된 원균은 이순신을 모함하여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데 모든 술수를 거침없이 사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만약 이순신 대신 수군의 병권을 쥐게 되면 왕명을 삼가 받들어 일거에 적의 소굴인 부산으로 쳐들어가 왜군을 일망타진 하겠다고 호언장담하였던 것이다.

왕 이연을 비롯한 일부 대신들은 원균의 이런 어린애 같은 헛소리를 그대로 믿고 있었다.
따라서 적이 흘려주는 정보를 그대로 믿고 바다에 나가 적장을 잡아오라는 유치한 명령도 내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원균은 일단 삼군통제사에 임명되자 적을 소탕하러 출동하기는커녕 한산도 본영에 처박혀 매일같이 주색잡기에만 정신을 팔고 있었다.

원균이 이처럼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는 동안 왜병들은 매일같이 부산과 대마도, 규슈를 분주히 오가며 병참 수송을 계속하니 조선에 상륙한 왜군들의 전력은 날로 강력해져 갔다.

더 이상 사태를 관망할 수 없게 된 도원수 권율은 원균에게 즉시 출동하여 왜군의 수송로를 바다에서 차단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원균은 갖은 핑계를 다 대면서 결코 출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적병들의 전력은 그만큼 더 증강되어 갈 뿐 그러나 이를 격멸해야 할 함대 사령관인 원균은 도무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도원수의 명령이 무시되자 더 이상 원균의 작태를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권율은 이 사실을 이연 왕에게 보고하였다. 이에 따라 왕은 선전관 김식(金軾)을 파견하였다.

7월 1일, 마침내 수군 사령관 원균은 도원수 권율 앞으로 소환되었고, 이 자리에서 왕의 선전관 김식은 출전하라는 어명을 전했다.

“통제사는 어명을 가벼이 여긴 이순신의 경우를 생각해 보고, 어명을 어길 때는 그 결과가 어찌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함대 출동에는 나 자신도, 조정의 명령에 따라 통제사의 기함에 오를 것이다. 나는 임금으로부터 원균 통제사의 전투 상황을 낱낱이 조정에 보고하라는 어명을 받고 있다. 그리 알고 즉시 출동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라.”

선전관 김식을 통해 어명을 전달 받은 원균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번만은 도저히 빠져 나갈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감히 왕명을 무시하고 불충하게도 출전을 거부했다고 모함하여 그를 죄인으로 만들었던 원균이 이번에는 그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미련한 왕의 억지 출전명령을 원망하게 되었다.

7월 15일, 마침내 원균이 움직였다. 이때의 출동은 삼도 연합함대 소속의 모든 군선을 출동시키고 있는데 그 규모는 판옥선을 주축으로 하는 전투함이 134척이고 전투 보조용 협선이 역시 134척이어서 군함과 협선을 합쳐 무려 268척이나 되는 대함대였다.

그런데 여기서 원균함대가 출전하는 과정에 이상한 점을 발견된다. 그것은 원균의 출전 명령이 떨어지자 각 함대는 오전 내내 출전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정오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산도의 두을포를 출항하였는데, 오후 2시경에는 3도 수군의 최대 전략적 요충지인 견내량을 당당히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순신 제독이 중요한 작전을 전개하기 위하여 본영을 발진할 때의 시간이 항상 세상이 잠들고 있을 무렵인 밤 2시경 이었으며, 특히 전략 요충지인 견내량을 통과할 때는 마치 도둑고양이가 된 듯 은밀하게 행동하였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아군 함대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감시망으로부터 아군함대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전략적 차원의 잠도 작전이었다.
이에 비하여 원균은 처음부터 함대의 출동사실을 적에게 노출시켜 그들로 하여금 닥쳐올 사태에 미리 준비하고 대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7월 5일 저녁 7시, 조선의 원균 함대는 칠천도의 외즐포에 도착하여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도 정오쯤이 되어서야 원균은 또 다시 함대를 이끌고 외즐포를 출발하여, 2시쯤에 영등포를 통과하여 옥포로 향하였다.

조선의 대함대가 출동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달려온 일본해군의 장교들은 멀리 안골포 남단에 있는 육망산(陸望山:해발 187M)에 올라가 조선의 기동함대가 서서히 옥포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분명히 확인하고 크게 당황하였다. 지금까지의 예로 보아 조선함대는 언제나 한밤중에 귀신도 모르게 이동하여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 불숙 나타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원균 함대는 한낮에 왜병의 감시망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당당히 자신들이 향하고 있는 방향까지 미리 알려주며 기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조선의 신임 해군사령관 원균이 일본군을 아예 무시하고 있던가, 아니면 믿기는 힘들지만 그가 함대 운용의 기초도 모르는 무지한 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원균 함대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원균이 부산진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감지한 왜장들은, 원균이 옥포에 정박하고 있는 그 시간에 벌써 안골포, 웅포, 가덕, 김해, 죽도 등지에 분산되어 있는 함선들을 긴급히 부산으로 집결시켜 조선의 신임 해군사령관 원균의 연합함대와 한판 진검 승부를 준비하고 있었다.

7월 7일 새벽 4시, 원균의 삼도수군 연합함대는 옥포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였고, 약 3시간 후에는 가덕도 남방을 통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함대의 움직임은 봉수대 및 응봉(鷹峯:해발358m)과 연대봉(煙臺峯:해발 459m)에 설치되어 있는 왜병의 감시 초소에 의해 낱낱이 파악되고 있었다.
이것들은 원래 조선에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지금은 우습게도 조선을 침략한 왜병들에 의해 이용되고 있었다.

조선해군 함대의 가덕도 남방 통과를 알리는 봉화가 하늘 높이 올랐고 이를 발견한 부산의 왜장들은 무려 1천여 척의 대함대를 부산 방어를 위하여 절영도(영도)의 후면에 대기시켜 놓았다. 내 집으로 들어오는 지친 적을 역으로 기습하여 잡겠다는 전략이 그 하나이고, 아직 미지수인 원균의 작전능력을 탐색해 보려는 것이 숨은 저의(底意)였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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