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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장 고려-몽골 연합대군 일본원정
여몽연합군(麗蒙聯合軍) 제1차 일본원정(日本遠征) 3

다음날 아침이 되자, 밤새도록 천지를 뒤엎을 것처럼 휘몰아치던 폭풍우는 거짓말처럼 가라앉고, 하카타만의 물결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좁은 항내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500여 척의 군선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간밤의 처절한 비극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김방경을 비롯한 연합군의 장군들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망연자실하였다. 다행히도 가우리측에서 건조한 약 300여 척의 큰 전함들은 그런대로 온전하였으나, 바아투르경질주(拔都魯輕疾舟)3)라고 불리는 중국제 몽골군의 돌격선들과 보급품을 실은 수송선의 대부분이 모두 항해불능 상태로 파손되었거나 물속으로 가라앉았고, 몽골의 기함에 해당하는 대형전선 천료주(千料舟)도 온전히 살아남은 것이 없어서 더 이상 일본정복을 위한 전투임무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난 하룻밤의 태풍으로 입은 피해를 가우리의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대부분 몽골측의 군선에 용병으로 승선했던 가우리의 수병과 노꾼을 포함하여 몽골의 최정예 병사들의 희생이 무려 1만 3천 5백 명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들 희생자들 중 몽골측 정예 병사들의 희생이 특히 많았던 이유는 그들의 대부분이 그들이 소속된 소형 돌격선인 남송식의 바아투르경질주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배 바아투르경질주는 몽골에 정복당한 남송의 강남조선소에서 제작되었는데 그 활동무대는 양쯔강 하구로서 빠른 속도를 위하여 폭이 좁고 길이는 길어 물결이 잔잔한 바다에서는 위력적이겠으나 거친 태풍의 험악한 파도에는 걷잡을 수 없이 뒤집히며 전복되고 곧이어 침몰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데 강남에서 제작한 몽골의 군선들이 참담한 피해를 입은데 반하여, 가우리의 군선들이 대부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의 이유는 역사 이래로 동양 최강의 해양제국 백제해군의 전통을 그대로 승계한 가우리의 첨단 선박 제조기술에 있었다.
속도 위주의 중국이나 일본 배들과는 달리 한국의 해안상황에 적당하도록 바닥을 평저선으로 하고, 선체는 삼중의 버팀목을 사용하여 거친 현해탄 도항에 배 몸체의 흔들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튼튼히 제작되었던 것이 핵심적인 차이였다.
이처럼 탁월한 선박 제조술의 전통은 임진왜란 때까지 이어져 한국을 침략했던 일본의 허약한 군선들을 마구 때려 부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우리의 해안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일삼는 왜적들을 철저히 분쇄하고,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온 교토(京都)의 고우다(後宇多) 천황을 붙잡아 막부를 응징하려던 가우리의 작전은 이로써 일단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김방경 도독과 홀돈은 더 이상 작전수행이 불가능함에 의견을 같이하고 전연합군에게 즉각적인 철수명령을 내리니 태풍의 악몽이 끝난 다음날 10월 22일이었다. 이때 살아남아 항해가 가능한 전선은 모두 400여척으로, 출정할 때 900척 중 절반이 넘는 500척이 단 하룻밤의 태풍으로 수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귀로에 오른 연합군 함대는 22일, 일기도에 이르러 일시 정박하며 식수를 보급하였다. 오래간만에 심신의 지친 몸을 쉴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잔존 몽골병사들은 배멀미의 고통을 벗고자 재빨리 상륙하여 육지의 흙냄새를 만끽한다.

그러나 김방경은 가우리 병사들만 따로 지휘하여 일기도의 섬을 구석구석 뒤지며 아직도 살아서 숨어 다니던 해적들을 찾아 철저히 소탕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 그림들은 모두 ‘몽고습래회사’에 묘사되어있는 것들이다.
위쪽의 장면은 하카다에 상륙한 후 전투 대열을 짓고 있는 몽골군의 모습이고, 아래쪽의 그림은 몽골측의 전투선이다. 아직 사진이 없던 시절에 종군 하면서 본 대로 그린 것인데 하룻밤 태풍을 견디지 못하고 무력하게 침몰된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일기도에서 하루를 보낸 연합함대는 25일에 이르러 대마도에 도착하였는데 마침 바다가 잔잔하여 대부분의 몽골 병사들은 배안에서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김방경은 다시 가우리군들만 따로 인솔하고 대마도에 재 상륙하여 혹시 아직도 살아 남아있을지 모르는 해적들을 찾는 수색작전을 펼쳤다.
이때 왜적들에게 납치되어 동굴속에 갇혀있던 가우리의 동남동녀(童男童女) 200여 명을 구출하는 개가를 올린다.

이때 김방경이 취한 일련의 행동으로 보아 이번 원정에 동참한 가우리군의 목적이 처음부터 한국의 남해안에 출몰하는 해적들을 철저히 소탕하는데 있었음이 좀 더 명확해진다.

3) 바아투르경질주(拔都魯輕疾舟)바아투르란 몽골어로 ‘용사’를 말하는데 군대용어로는 돌격대의 선봉 역할을 맡는 용감한 용사라는 뜻이다.

몽골습래회사에 그려진 몽골군선 바아투르경질주(拔都魯輕疾舟)에 승선하고 있는 몽골군 돌격대 병사들의 모습.

<선몽골습래회사>중에서 : 당시 몽골에 맞선 일본측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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