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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8장 이순신함대
이순신 함대 제1차 출동(李舜臣 艦隊 弟一次 出動) 3

일본의 선발대가 달려드는 것을 본 이순신 제독은 기동 함대에 명을 내렸다. 기동함대는 갑자기 양쪽으로 팔을 벌리듯 진을 펼치며 일본 함대를 에워싸듯 하니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순신 제독의 학익진(鶴翼陣)이었다.

당시의 해전이란 세계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접현전(接舷戰)이었다.
즉, 멀리서 대형 화포를 발사하여 적선에 손실을 입힌 다음 서서히 접근하면서 봉화시(烽火矢)로 교전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배를 밀착시켜 적선으로 뛰어올라 백병전을 벌여 승부를 내는 방식이었다.
백병전을 노리고 일본 해군은 함대를 어려진(魚儷陣 : 몰려다니는 물고기 모양)으로 펴고 조선 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단 충돌하면 배에서 배로 옮겨 다니며 백병전을 벌이기 좋은 형태였다.

이에 비하여 이순신의 독창적인 해전법인 학익진(鶴翼陣)은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인데 이것은 어려진으로 달려드는 적들에게 중앙을 돌파당하면, 적군은 밀집해 있고 아군은 분산되어 있어 도저히 백병전으로는 이길 승산이 없는 형태였던 것이다.

결국 조선 해군의 제독은 해전에 전혀 경험이 없는 자이거나 아니면 함선들이 일본 함대가 돌격하여 오자 미리부터 겁을 먹고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는 중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이렇게 생각한 다카토라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벌써부터 승리감에 도취되어 버렸다. 그런데 다카토라 함대가 이순신 함대의 기함(旗艦)에 바짝 접근했을 때, 갑자기 조선 함대 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배 한 척이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더니 입속에서 대포를 발사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다카토라의 최선봉 전함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순신 함대의 돌격선인 거북선의 출현이었다.

깜짝 놀란 다카토라가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적선의 갑판은 철판지붕으로 덮여 있고, 게다가 지붕 위에는 날카로운 창끝이 무수히 솟아 있어서 만약 적선에 올라타기라도 하면 곧 고슴도치가 될 것이 분명하였다. 결국 왜군으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다카토라 함대와의 해전은 이순신의 기동 함대로서는 최초의 해전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어온 공포의 왜적(일본해군)을 만나 그 동안 개발하여 전선에 장착한 모든 전투병기들과 새로 구상한 해전법을 실험해 가면서 적의 의표를 완전히 찌른 한판 승부였다.

특히 새로 함재포로 개량한 구경 16cm의 천자포(天字銃筒)을 비롯하여 현자포(玄字銃筒), 황자포(黃字銃筒), 지자총통(地字銃筒) 등도 각각 제 목적에 맞는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왜선을 격파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순신 제독이 첫 번째의 해전부터 학익진을 편 진짜 이유는 전함의 양측에 있는 20문의 대포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즉, 적선이 백병전을 노리고 어려진을 이루어 일직선으로 달려들 때 우리는 적선을 가로막는 정(丁)자 형태를 형성하였고, 적선이 배의 머리에 있는 대포를 한 방 쏠 때 우리 군선은 측면의 대포 10문을 일시에 발사할 수 있어 화력 면에서 10대 1의 절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학익진 성공의 비밀이었다.

이순신 제독에 의하여 개발된 정(丁)자 타법은 아이러니컬(ironical)하게도 300년이 지난 1905년 5월에 벌어진 남해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일방적으로 격파한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5)에 의해 계승되었다.

조, 일(朝日七年戰爭) 7년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참패를 당한 당시 일본 수군의 전략상 문제를 깊이 연구하던 도고 헤이하치로는 마침내 이순신의 학익진과 정(丁)자 타법의 비밀을 알아내었다.
그 후 제국연합함대 사령관이 된 도고는 일본제국의 운명이 걸린 러시아의 발틱 함대와 사활을 건 결전에서 이순신의 학익진과 정자 포격법(일본에서는 T자 타법이라 함)을 사용하여 기적같은 대승을 거두고 그의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이후 그는 이순신 제독을 일본해군의 군신(軍臣)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순신 함대의
옥포해전 전과

일본 대전함 16척, 중군함 8척, 소선 2척 등 총 26척을 격파하고 일본수군 4080명을 도살함.

아군피해
전선피해--없음.
전사자---없음.
부상자---2 명

이상의 전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옥포해전은 이순신 연합함대의 완벽한 승리였다.

그럼 이야기를 다시 본론으로 돌려, 옥포해전의 전개 상황을 들여다보기로 하자.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조선해군의 기습공격으로 돌발적인 전투에 돌입하게 되었지만 기세 좋게 달려들던 조선함대가 왜선들이 맹렬히 돌진해 오는 모습을 보고 주춤거리며 배를 돌려 늘어서는 모습이 도도 다카토라의 눈에는 약간은 겁을 먹은 모습으로 보였는지 돌연 독전기를 올리고 모든 전선으로 하여금 적선에 기어올라 접근전을 펼치도록 군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전 일본 군선들은 결사전을 위하여 전속력을 다하여 총 돌진해 들어갔다. 그런데 일본 전선들이 조선 군함에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그때마다 발화 탄을 맞게 되어 적선에 기어올라 일본군의 장기인 백병전을 벌이기는 커녕 제 배안의 불을 먼저 진화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조선 함선의 양옆에 도열한 총구에서 뿜어 나오는 화력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결사적으로 접근하여 스스로 총알받이가 되어주는 일본 전함들을 무참히 도륙내고 있었다.

이리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군함들은 그 기동력을 상실해 가더니 먼저 화염에 휩싸였던 일본 군선들부터 차례로 격침되어 갔고, 그나마 아직 살아남은 왜적들도 이미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채 혼비백산하여 기함만 쳐다보며 마지막 희망인 퇴각명령의 깃발이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게 되었다.

바로 이 때 조선 함대의 조부장 이호(李浩)가 전공을 탐하여 용감하게 적선에 뛰어 올라 왜장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소속 전선을 이탈하여 싸우는 백병전은 이순신 제독의 새로운 해전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백병전으로 적 한 명을 죽이는 것보다는 역시 대포 한 방으로 수십 명의 적을 격살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이순신의 생각이었다.

사실 당시는 전쟁에서 적병의 목을 취하여 이를 전공의 증거로 삼는 불문율이 조선과 일본군에 공히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적당한 기회가 있으면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 병사들의 습성이었다.
더구나 병사의 수에서 절대 열세인 조선해군으로서는 병사 한명의 목숨이라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결정적인 사유도 있는 만큼 적어도 제독의 명령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전라좌수군에 한해서는 적의 목을 취하기 위하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위로 얻어진 적의 수급은 그 수효가 제아무리 많아도 전공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闡明)하였다.

이처럼 이순신은 적과의 불필요한 함상(艦上) 백병전을 피하고, 적병을 도살하기 위해서 칼에 피한방울 묻히지 않도록 한 채 정(丁)자 포격의 함포전(艦砲戰)으로 적의 전선을 격침시킴으로서 적병들을 함께 몰살시키는 작전을 구사 하였으니, 이것이야 말로 세계 최초의 현대적 해전의 시작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엄청난 전법의 차이를 이해 못한 일본의 다카토라 함대가 불행하게도 이순신 제독을 만나 초전부터 비참한 패전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장수로서 전장에 나서 단 한번의 패배도 몰랐던 다카토라는 그의 전함이 불길에 휩싸이며 침몰하자 결국 물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백병전을 예상하여 무겁게 차려입은 갑옷과 긴 칼이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간신히 헤엄쳐서 거제도로 기어오른 다카토라는 며칠 동안을 숨어 다니다가 뗏목을 만들어 타고 기적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역사적인 옥포해전은 그 동안 산 속에서 숨어 지내던 수많은 옥포 주민들의 관전하에 벌어졌다. 느닷없이 밀어닥친 왜적들에게 쫓겨 산 속으로 도망가 왜적들에게 자기 집이 약탈당하고 불 질러지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했던 백성들이었다.

그 때, 혜성같이 나타난 이순신의 기동 함대가 일본 선단을 통쾌하게 괴멸시키고 승리를 거두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주민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였다.

이로써 5월 4일 출항한 이순신의 기동함대는 5월 9일 개선할 때까지 옥포(玉浦), 합포(合浦), 적진포(赤津浦) 등지에서 일본의 전투 선단을 발견하고 이들과 벌인 해전에서 연전연승의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어 함대의 위상을 높이고 왜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5) 도고 헤이하치로(東卿平八郞) 사진
러일 전쟁 승전 축하연에서 신문 기자가 도고 제독을 넬슨 제독과 이순신 제독에 비견하자 도고는 즉각 “이순신 제독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내었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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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박정욱님...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제가 주로 선생님께 여쭤봐서 답변을 정리해 드리는데... 중국, 베트남 출장등이 연속되는 바람에... 너무나 늦었습니다.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이순신의 장계에서 거북선의 활약을 기록한 것이 2차 출정(사천해전)을 기록한 장계에 처음 나오기에 그렇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나,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1차출정(옥포) 때에도 참전 장수중에 돌격장 이언량이 나오고, 2차에는 돌격장이 이기남과 이언량으로 이때는 이 둘이 거북선 좌우현을 각각 지휘한 것으로 나오는바,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장계의 활약상은 2차에 넣었으나 1차에 이미 출정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당시의 전투 상황을 기록한 한,일 등의 기록으로도 타당해 보인다.고 하시네요.
    이석남 저 국구의 영웅 이순신이란 책 등(좀 자세히 나온 대부분의 책들과 기록)에서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1차 옥포에서의 돌격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이 거북선의 내용이라는 것이고, 또 2차 사천에서 거북선의 활약을 보고하면서 돌격선이 곧 거북선인 것으로 그 지휘관과 내용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따라서 책의 내용은 1차 옥포(돌격선으로 지칭)와 2차 사천(거북선의 활약을 장계에 씀)을 구성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순신의 장계에는 거북선의 효용을 말하고 있으나, 처음 출전시켰다고 하지 않았고, 당시 정황으로 부족한

  • 김종수 218.209.141.157 2007-12-14

    병력에서 거북선을 뺄 이유가 없으며, 1차때는 훈련이 부족한 관계로 그 효용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아 2차 사천해전을 보고하는 장계에서 언급한 것일 것이라고 보시는 것입니다.
    답변이 되였는지요? 다시한번 너무 늦은 답변에 대해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박정욱 220.77.188.66 2007-12-10

    아무리 기다려도 답변없는데 그리고 왜 늦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운영자님 꼭 답신 기다리겠습니다

  • 다물넷 61.79.128.78 2007-09-17

    죄송합니다. 답글을 달수있는 분이 중국출장중이어서 늦어집니다. 조금 더 기다려주세요~

  • 박정욱 59.19.59.90 2007-09-15

    dn윗글에 대해 답이 없어 한번더 요청합니다 근거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박정욱 221.162.133.93 2007-09-03

    대한민국해군에서 발간한 자료에 의하면 거북선이 최초로 출동한게 2차 출전의 첫전투인 사천해전이라고 기록하던데 어떤게 진실인지요...

  • 거타성 220.119.219.253 2007-09-03

    수고 많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를 알리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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