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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6장 용이 물을 얻다
용이 물을 얻다 2
취임 이튿날 이순신은 먼저 병력의 인원점검부터 시작하였는데 뜻밖에도 정해 왜변(丁亥倭變)때 왜적들에게 잡혀갔다가 되돌아 와 복무중인 병졸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들은 공태원(孔太元)과 김개똥(金介同) 그리고 이언세(李彦世)라는 수병들로서 그중에서 공태원은 왜어(倭語)에 능통하였다.
너무나 기쁜 이순신은 즉각 그들을 불러들여 그들의 시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왜국의 사정에 대하여 물었는데 이때 이들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들을 쏟아 놓는다.

“왜놈들에게 잡혀가 있는 동안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도 수상하고 괴이해서 제 나름대로 열심히 정보를 수 집하였사온데, 결과적으로 머지않아 왜놈들이 반드시 조선을 침략하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놈들은 벌써 3년 전부터 조총(鳥銃)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조선 침략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나이다.

대체로 왜놈들의 성정(性情)은 온순한 편이지만 일단 전쟁터에 나가면 군주를 위하여 죽는 것을 무상(無上)의 영광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매우 용맹하고 악랄하며 간사하여 남의 의표(意表)를 찌르는데 명수들이옵니다.”

이순신은 뜻밖에도 이들로부터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던 왜인들의 실체에 대하여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공태원 등의 정보가 신빙성이 있어 보이므로 왜침이 반드시 있을 것으로 판단한 이순신은 스스로 전쟁에 대한 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순신은 우선 그 동안 해이해진 병사들의 군 기강부터 바로 잡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하였다.
이때 천민출신인 공태원은 감히 사령관을 곁에서 모실 수 있는 통역관에 발탁되었다. 이것은 공태원이 왜인들에게 잡혀있는 동안 습득한 일본어 구사능력이 필요한 이순신에게는 당연한 인사이동이었다.

그러나 신분차별이 군대에서도 당연시되었던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 보아 천민 출신의 병졸을 역관의 위치로 신분상승을 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이순신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외의 병사들 중에서도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특별한 재주를 가진 자들을 따로 선발하여 모두 제 전문분야에서 적성에 맞는 활동을 능률적으로 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돌연 장병들의 사기가 중천에 떠오르게 되었다.

역대의 사령관들이 전라좌수영을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알고 해군기지의 운영은 안중에도 없이 방탕하게 놀다가 떠나갔었음으로, 이번 신임 이순신 사령관도 그저 적당히 세월이나 낚다가 떠날 것으로 생각했던 좌수영 병사들은 일개의 졸병들까지 하나하나 격이 없이 대해주는 신임 제독의 자상한 배려에 감동하여, 사령관의 의지에 따라 좌수영의 재건 사업에 자발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좌수영의 기본 틀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병사들의 기강이 어느 정도 바로 세워졌다고 판단한 이순신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한다. 그러나 이순신의 이러한 행동은 아직도 이연 왕이 전쟁은 없을 것이라며 거스를 수 없는 국론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하면 역적모의라는 엉뚱한 화를 불러 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떳떳하게 군병을 모으는 일조차 역적모의로 몰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진 이순신은 우선 방위작업부터 착수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항구의 지형과 수로를 조사하여 보니 전라좌수영이 위치한 여수(麗水)에는 앞뒤로 수로(水路)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상시에는 한쪽 수로를 봉쇄시키고 모든 전력(戰力)을 남쪽으로만 집중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전략은 이미 경오왜변(庚午倭變•三浦倭變 ) 때 도원수 유선정(柳順汀)이 착안한 것이었다. 곧이어 수중 장애물인 철쇄(鐵鎖)를 횡설(橫設)하기 시작하였다.

이 수중 장애물은 좌수영 본부로부터 동쪽으로 약 5리 지점에 위치한 소포(召浦)와 그 건너편 돌산도(突山島) 북단 사이 약 200m를 연결한 것이었다. 구멍을 뚫은 큰 돌에 철쇄1)와 통나무를 연결하여 가라앉혀 놓았는데 수면 위에선 보이지 않게 되어 있음으로 왜선들의 무단침입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곳은 무슬목[無膝項]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는데 이쪽의 수로를 봉쇄한 이유는 지리적으로 왜국과 경상도 방면에서 전라좌수영을 침범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요충 수로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좌수영 해군사령부의 침탈에 대비한 약점을 우선적으로 보완한 이순신은 곧 좌수영 내의 무기고를 점검한다.

이때 이순신은 한심한 상황을 목격하게 되었다. 활줄은 늘어진 채 방치되어 있고, 활통 역시 파손된 채로 있으며, 칼은 녹슬고 투구도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부패했던 당시 조선 병영의 사정은 대체로 이러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실망하지 않고 곧 이를 바로잡아 갔다. 좌수영의 성을 수리하고 해자(垓子)도 다시 파 물을 채웠다.

비상시에 필요한 봉화대도 다시 견고히 하고, 항만도 새로이 정비하여 군선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박할 수 있게 하고 입출항의 혼란을 피할 수 있도록 새로운 항해 규칙도 만들었다.

이처럼 사령관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며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이자, 그동안 군기가 해이해졌던 좌수영의 군관과 병사들은 모두가 심기일전(心機一轉)하여 신임 사령관 이순신을 신뢰하고 따르게 되었다.

군관 이봉수(李鳳壽)는 최무선의 화약 제조법을 더욱 개량하고 대량 생산하여 비축하였으며, 정걸은 판옥선과 거북선 개발 외에도 불화살•철익전(鐵翼箭)•대총통 등을 발명하여 함선에 장착하니 좌수영의 모든 전선이 돌연 대포를 탑재한 함대로 바뀌면서 그 유명한 막강 이순신 함대로 그 모습을 일신하게 된다.

1) 이순신이 철쇄를 설치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으나,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현무실기(顯武實記) 중에 울도에서도 똑같은 방식의 장치를 설치했던 기록이 있어 간접 확인할 수 있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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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환 218.154.62.156 2007-08-18

    이름이 김개똥이라니...그걸 또 낄개에 같을동으로 써 놓다니...그런 이름을 군대에 가서까지 썼다니 웃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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