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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보는 역사

대한민족통사③ 이순신

  제11장 명량대첩
명량대첩(鳴梁大捷) 4

일본선단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이순신 제독의 포위망은 여간해서는 잘 뚫리지 않았다. 이날의 야전(夜戰)으로 선봉에 섰던 일본의 정예 군함들은 모조리 격침되었고, 겨우 탈출에 성공한 함선들도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이순신 제독의 천재적인 용병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완벽한 해전이었다.

벽파진 야습에 실패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쫓겨 온 함대를 보고 왜장들은 아연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괴멸된 줄로만 알았던 조선수군이 아직도 건재해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이 수수께끼 같은 유령 함대의 정체는 무엇일까? 만의 하나 일본군이 모르는 또 다른 조선 함대가 있다면, 서해 수송항로를 확보할 때까지 현재 진행 중인 수륙병진 작전은 당장에 중지하고 먼저 이들을 찾아 섬멸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이즈음 유령 함대의 지휘관이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이순신 제독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자, 일본군 장군들은 크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이순신이 조선해군 총사령관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문을 확인하는 전갈을 본영으로부터 받는다.

청천벽력 같은 아순신의 출현에 왜장들은 큰 공포에 빠졌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은 일본해군의 수뇌부들은 아무리 이순신이라고 해도 그가 귀신이 아닌 이상 13척의 패잔 함선만으로, 조선해군의 연합함대 200여척을 괴멸시킨 바 있는 일본의 신예 전투함대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자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이순신은 옛날 같이 그자신의 정예함대도 없으며, 더구나 지금의 일본해군은 새로 건조한 최신형 전투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마침내 일본의 해군 수뇌부는 최신형 전투함을 총 동원하여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13척의 패잔선들로 편성된 이순신 함대를 격멸하라는 최종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리하여 한강의 상륙부대 10만 명을 포함한 일본의 최신예 전함 200여 척이 이순신 함대가 정박해 있다는 벽파진에서 70리 거리에 있는 어란진으로 집결하였다.

이러한 일본함대의 부산한 움직임은 이순신 제독이 쳐놓은 정탐망에 걸려 시시각각으로 벽파진으로 보고 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9월 9일, 기다리고 있던 일본의 정탐선 2척이 나타나 벽파진에 있는 이순신 함대의 동태를 면밀히 정탐하고 돌아갔다.
조선군의 함대가 작은 협선을 제외하고 실제로 동원할 수 있는 전함이 12척뿐임을 최종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해군은 벽파진을 목표로 하여 작전을 전개할 것이었다.

일본의 정탐선들이 벽파진의 지형과 수로 그리고 이순신 함대의 동태 등을 관측하고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서도 어찌된 셈인지 이순신 제독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그저 무방비 상태로 관망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군의 공격 목표를 벽파진으로 유도하려는 결정적인 속임수였다.

9월 14일, 드디어 삼호원(三湖院) 나루터에서 봉화가 올랐다. 어란진을 감시하고 있던 척후 군관 임준영(任俊英)이 일본함대의 움직임을 정탐하고 제독에게 보고하는 신호였다.

“제장들은 잘 들으라. 지금 조국의 운명은 바야흐로 우리 13척 함선에 달려 있다. 왜적들은 적어도 10만의 대병과 수백 척의 함선을 동원하여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오늘 현재 적어도 약 200여 척의 함대들이 어란진에 집결중이며, 그 중에서 거함 55척은 이미 출전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따라서 오늘밤에라도 적의 야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밤보다는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내일 중으로 공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우리는 적의 공격 목표를 이 벽파진으로 정해 주었고, 이제 적들도 이곳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오늘밤 9시에 순류를 타고 은밀히 우수영으로 이동한다.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내일의 전투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라.”

이때 예하의 군관이 이순신 제독에게 물었다.
“한 가지 질문이 있나이다. 통제사께서는 왜적선 수백 척이 몰려오고 있다 하셨소이다. 그러면 우리는 13척의 함선으로 왜적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고, 다같이 장렬하게 죽자는 뜻이오이까?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장군의 의중을 알고 싶어 묻나이다.”

이순신 제독은 이에 우리 한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명언으로 답하였다.

“병법에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必生則死)’ 즉 ‘죽기를 각오하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들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다. 사나이 한 목숨 나라를 위해 바친다면 무엇이 아깝겠는가? 제장들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 말라. 그러나 나 이순신은 결코 제장들을 값없이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 나를 믿고 따르라.”

“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싸움을 해왔지만 단 한 차례도 패해 본 적이 없으며,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부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싸움도 제장들이 나를 믿고 최선을 다해 준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선은 수백 척이 넘는데 우리는 단 12척3)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연의 조화와 천험(天險)의 지형이라는 막강한 동맹군이 있다. 이 지도는 전라우수영의 해로를 그린 것이다. 이 곳 명량해협을 눈여겨 보도록 하라.

첫째, 해협 양쪽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있는데, 밀물 때는 사라졌다가 썰물 때는 다시 노출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밀물을 따라 들어왔다가는 암초에 걸려 침몰하기 십상이다.

둘째, 해협의 폭은 평균 1500자이지만, 좁은 곳은 불과 900자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그 양쪽으로는 수많은 암초들이 널려 있어서, 배가 통과할 수 있는 수로는 실질적으로 400자밖에 안 된다. 따라서 왜적선들은 반드시 이 협수로를 통과해야 하므로, 우리 함대 12척이 이 곳만 지키고 있으면 적을 막을 수 있다.

셋째, 이 곳은 물살이 세고 거칠기로 유명한 곳이다. 내가 나포한 왜선을 타고 현장에서 자세히 살펴보니, 요즈음은 사시(巳時, 오전 9시)와 술시(戌時, 오후7시)에 물이 북쪽으로 흐르고, 인시(寅時, 오전 4시)와 신시(申時, 오후4시)에는 남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이 급조류를 이용하여 왜적을 섬멸할 계획이다. 제장들은 기함을 주시하고, 수시로 변하는 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라. 만약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추후에 반드시 엄중한 문책을 가할 것이니 이를 가볍게 듣지 말라.”

이순신 제독은 자상하게 작전을 설명하며 불안에 떠는 부하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승리의 자신감을 심어 주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9월 15일(다음날), 일본군의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 이순신 제독은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순류를 타고 전 함대를 몰아 결전 장소로 계획하고 있는 명량해협을 통과하여 우수영으로 옮겨갔다.

3) 원래 배설 등에 의해 확보한 판옥선 12척 외에 김억추 등이 나중에 합류하면서 끌고온 1척으로 이 때의 총 보유 전함의 수는 13척이었으나, 그 중 한 척이 전투에 사용되기에는 파손이 심해 명량해전에서는 후위에 대기하고 실제 전투는 12척으로 이루어졌다.

  • ※ 내용중 물음표(?)형태로 표기된 글자는 웹상에서 표현이 불가능한 확장한자입니다.
  • ※ 한자의 음이 바깥음과 다를 때에는 []로 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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